통도사 단오용왕재는 물을 다스리는 용신에게 화마(火魔)로부터 가람을 수호해 주길 요청하는 의식이다. 매년 단옷날 많은 공양물을 차리고 수백 명의 사부대중이 모인 가운데 경내 구룡지 옆이나 설법전 내에서 봉행한다. 재가 끝나면 각 전각과 요사의 들보 머리에 놓여 있던 묵은 소금단지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의식이 진행된다.
〈그림 1〉 구룡지 옆 용왕재 봉행(통도사, 2016)(불교신문)
통도사에서 단옷날 용왕을 모시는 이유
모내기가 마무리된 단오 무렵은 무엇보다 비가 간절하므로 용왕을 모시는 의례는 민간 단오축제(법성포, 전주 덕진연못, 강릉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사찰 의례에서는 드물다. 사찰에서 용왕재는 주로 정초에 방생법회와 함께 업장소멸과 풍요를 발원하는 의미로 진행되며, 단옷날 화기 제압을 위해서는 주로 ‘소금묻기’ 의식이 보편화 되어 있다. 여느 사찰과 달리 통도사에서 단옷날 용왕재를 지내는 이유는 민간 풍습이 수용된 배경과 더불어,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눈먼 용’ 이야기가 깊게 개입되어 있다.
설화에 의하면 자장 스님이 중국에서 문수보살의 수기를 받고 귀국하여 지금의 통도사 자리에 가람을 짓고자 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비바람을 일으키며 백성을 괴롭히고 있어, 스님이 설법으로 용들을 제압했다. 이에 아홉 마리 용이 항복하여 물러났는데, 그중 한 마리는 급히 도망가면서 큰 바위에 부딪혀 눈이 멀게 되었다. 눈먼 용 한 머리는 어디도 가지 못하고 통도사에 남아, 자장 스님께 통도사를 지키는 호법용이 되고 싶다고 청했다. 이에 스님이 용의 청을 들어 못을 다 메우지 않고 한쪽 귀퉁이를 남겨 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구룡지다.[1]통도사 영축문화연구원(2022), 『한 권으로 읽는 통도사』, 양산: 통도사, 181-182쪽.
설화의 내용을 고려해 볼 때, 통도사 단오용왕재는 구룡지에서 통도사를 수호하고 있는 그 눈먼 용을 소청(召請)하는 의식임을 확인할 수 있다.
대적광전 항화마진언 속의 용
통도사 단오용왕재와 관련된 용의 존재감은 가장 오래된 전각인 대광명전의 천정 밑 도리에 적힌 항화마진언(抗火魔眞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집에 한 분의 손님이 계시니 吾家有一客(오가유일객)
틀림없이 바다의 사람이라. 定時海中人(정시해중인)
입에는 하늘까지 넘치는 물을 머금고 口呑天漲水(구탄천창수)
능히 불을 제압하네. 能殺火情神(능살화정신)
〈그림 2〉 대광명전 내부 평방의 항화마진언(통도사)(불교신문)
항화마진언이 새겨진 대광명전(보물 제1827호)은 1756년 화재로 전소되었는데, 그로부터 2년 뒤 가을에 중건한 이후로는 지금까지 한 번도 화마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통도사 사부대중은 목재에 취약한 목조건물이 250년이 넘도록 화재를 한 번도 입지 않은 까닭으로 전각의 천장 평방(平防) 나무에 적힌 ‘항화마진언’의 영험을 거론하기도 한다.
의례 진행 과정
이른 아침부터 오백여 명의 사부대중이 설법전(혹은 구룡지)에 모인 가운데, 설단 위에 각종 공양물과 60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소금단지를 진열해 놓고, 재를 시작한다. 용왕을 모시는 범패와 작법을 설행한 후, 단오절을 맞이하는 주지스님의 법문을 듣는다. 1시간여의 의식이 끝나면, 주지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이 참여불자에게 일일이 소금을 나눠 준다. 소금이 담긴 봉투에는 대광명전의 ‘항화마진언’이 그대로 인쇄되어 있어, 각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한편, 같은 시각 통도사의 학인스님들은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영역별로 각 전각과 요사채의 소금단지를 교체하는 의식을 진행한다. 스님들은 들보의 네 모서리 주두(柱頭)에 사다리를 대고 올라가, 작년 용왕재 때 얹어 놓은 소금단지를 내리고 올해 새로이 마련한 소금단지를 올려 놓는다. 모든 소금단지의 입구는 ‘항화마진언’이 적힌 한지로 막아 놓았다. 경내 모든 소금단지가 새롭게 교체되면 통도사 단옷날 용왕재가 마무리된다.
통도사 단오용왕재의 특징과 의의
통도사 단오용왕재는 그 독창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아, 2017년에 대한불교조계종 지정 불교무형문화유산의 하나로 등록되었다. 다른 사찰에서 단옷날 화기 누르기로 ‘소금묻기’라는 단일한 방편을 쓰는 것에 비해, 통도사에서는 이뿐 아니라 용왕을 위한 재의식도 설행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용왕의 신성력을 상징하는 소금을 이용하면서 용왕 그 자체도 직접 의례에 모시고 있어, 화재 예방을 위한 사찰의례의 통합적인 면모를 살필 수 있다. 또한 옛것의 막연한 전승이 아니라, 의례의 역사적 증거가 뚜렷하다는 점도 의미 깊다. 창건설화의 눈먼 용 이야기와 경내 전각에 새겨진 항화마진언이 오늘날까지 활발한 통도사 단오용왕재를 뒷받침하는 정신적, 물질적 기반이 된다. 이런 점에서 통도사 단오용왕재는 전승의 독창성과 역사성이 빛나는 불교의례이다.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통도사 영축문화연구원(2022), 『한 권으로 읽는 통도사』, 양산: 통도사, 181-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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