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단옷날 소금묻기 행사는 화재로부터 삼보와 가람, 주변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해마다 단옷날 경내 곳곳과 남산제일봉에 소금과 소금단지를 묻는 의식이다. 연중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 바닷물을 상징하는 소금물(단지)을 이용하여 물로써 불기운을 제압한다는 의례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해인사는 장경판을 소장하고 있어 다른 어떤 사찰보다도 화재를 면하기 위한 비방을 철저히 전승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림 1〉 경내 염주석(鹽柱石)에 소금 넣기(해인사, 2023)(해인사)
1. 매화산의 화기를 누르는 풍수비방, 소금묻기
해인사는 임진왜란 때도 전화(戰禍)를 면했으나, 그 후로는 잦은 화재를 입었다. 숙종 21년(1695)부터 고종 8년(1871)까지, 180여 년의 짧은 기간 동안 일곱 번의 큰 화재가 발생했다. 이렇게 여러 차례 화마의 피해를 입은 해인사는 화재를 막기 위한 조치를 다각도로 취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대책 중의 하나가 소금묻기 의식이었다. 해인사의 스님들은 6번째 큰 화재 직후 있었던 대대적인 중건 이후부터 지금의 소금묻기 의례가 시작되었을 것[1]권순학(2013. 6. 14.), 「용왕재 올려 화기〈火氣〉 누르고 산봉우리 전각마다 소금단지」,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으로 추정한다.
단옷날 소금묻기 의식의 시작은 해인사가 갖는 풍수지리적 문제와 연관 된다. 해인사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매화산(埋火山)은 그 이름처럼 화기가 중중한 산이다. 풍수가들은 특히 매화산의 ‘남산제일봉’이 불꽃이 형형하게 타오르는 형상이라 그 강한 화기가 해인사를 엄습하여 자주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해인사에서는 물로서 불을 제압한다는 의미로 바닷물의 결정체인 소금을 이용한 화재막이 제의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이 의례가 시작된 이후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금묻기를 통해 화재를 예방하려는 조치는 민간 제의에서도 발견된다. 흔히 ‘불막이제’라고 불리는 이 의식은 화재가 자주 발생했던 지역이나 화기(火氣)가 강하다고 하는 마을에서 진행한다. 이런 마을에서는 바닷물이나 마을 우물물을 길어 와 항아리에 부은 다음, 화기가 강렬하다고 전해지는 땅에 그것을 묻는다. 바닷물이 화재를 누르는 신성력이 있다는 믿음으로,[2]정연학(2005),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속신과 신앙행위」, 『방재와 보험』 108, 서울: 한국화재보험협회, 38-41쪽. 간물단지를 마련해 화기가 서린 곳에 묻는 일을 간물신앙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사찰에서 민간의 이런 풍습을 수용해 불교의례로 승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2. 의례 및 문화행사 진행 순서
의식은 이른 아침(6시 30분)에 시작된다. 해인총림 전 대중은 대적광전에 집합하여 단오절 소재길상(消災吉祥) 기원문을 낭독하는 불공을 진행한 후, 경내를 돌며 소금묻기 의식을 시작한다. 의식은 원로 스님과 주지스님이 염주석(鹽柱石)이나 돌확에 소금을 붓고, 이어 물을 부은 후 덮개를 닫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대적광전 앞에서 시작하여, 우화당 뒷편, 봉화문 앞, 극락전 앞 삼거리 등을 돌며 일일이 소금물을 만들어 묻는다.
경내 의식이 마무리 되면, 스님들은 매화산 남산제일봉으로 향한다. 스님들은 말사에서 올라온 대중 스님, 가야산국립공원직원, 가야면청년회원 등 여러 불자들과 함께 해발 1,010미터의 봉우리에서 소금묻기 의식을 재봉행한다. 봉우리 다섯 곳(오방)에 소금단지 각 한 개씩을 묻고, 남산제일봉 암석 사이사이에도 한지로 싼 소금봉투 5개를 비장한다. 같은 시각, 사찰 뒷산인 가야산 중봉에서는 소수의 스님들과 불자들이 모여 단오절 마애불 헌공다례를 진행한다.
해인사에서는 단옷날 오전에 소금묻기 의식을 끝내고, 오후에는 선림원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겸한 문화행사를 펼친다. 사부대중과 가야면 지역민들은 제기차기, 투호, 족구, 줄다리기, 떡메치기, 고무신 던지기 등의 놀이와 국악인 초청공연 등을 함께하며 화합과 소통의 시간을 보낸다. 전통 단옷날의 놀이성과 축제성이 재현되는 시간이다.
〈그림 2〉 매화산 남산제일봉 소금묻기 의식 (가야산 국립공원, 2023)(해인사)
3. 해인사 단옷날 소금묻기의 특징과 의미
해인사 단옷날 소금묻기는 그 전통성과 축제성을 인정받아,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지정 불교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상태이다. 단오절에 다른 사찰에서도 화기를 다스리기 위하여 소금을 이용한 의례를 진행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경내와 경외 의식을 함께 치르는 곳은 해인사가 유일하다. 해인사에서는 화기를 누르기 위한 의식 장소를 사찰 내부로 한정하지 않고, 매화산 남산제일봉으로까지 의례 공간을 확장하고 있다. 풍수지리적 비보(裨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나, 가람과 산림이 하나로 연결되었다고 보는 화엄사상을 확인하게 된다.
한편, 소금묻기 의식이 끝나면, 해인사 구성원과 지역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동의 한마당이 펼쳐지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과거 단옷날의 놀이문화가 재해석 되어 이어지는 현장이자, 사찰 담장 안의 행사가 아니라 지역민과 함께 꾸려 나가는 대동 축제로서의 의의가 크다. 해인사 단옷날 의례를 통하여 전통의 계승과 축제의 한마당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권순학(2013. 6. 14.), 「용왕재 올려 화기〈火氣〉 누르고 산봉우리 전각마다 소금단지」,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
- 주석 2 정연학(2005),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속신과 신앙행위」, 『방재와 보험』 108, 서울: 한국화재보험협회, 38-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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