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 서산대제(西山大祭)는 임진왜란 당시 팔도도총섭이 되어 의승군을 이끌었던, 서산대사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충훈을 기리기 위해 치러지는 유·불교 복합식 국가제향이다. 매년 봄(음 3월), 가을(음 11월)로 서산대사의 진영을 모신 대흥사 경내 표충사(表忠祠)를 중심으로 의식이 치러진다.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때 73세의 나이에도 불구, 선조의 부탁으로 의승군의 총사령관인 팔도도총섭이 되어 전국 각지에서 의승군 5천여 명을 모았으며, 그의 제자들은 의승장이 되어 전투에서 승전보를 전하였다. 서산대사 역시 승군 2천여 명을 직접 지휘, 평양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임진왜란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공을 세웠다. 당시 서산대사의 공훈을 기려 선조 35년(1602)에 나라에서 정2품인 당상관과 증호를 내렸다. 대흥사 서산대제는 이러한 서산대사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한 의례이다.
〈그림 1〉 춘계 서산대제의 예제관 행렬 (대흥사, 2022)
대흥사 서산대제의 역사적 전개
서산대사는 선조 37년(1604) 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 보현사에서 입적하였다. 대사의 유훈에 따라 3년 후 유품의 일부가 대흥사로 전해져 지금까지 법맥을 잇고 있다. 그로부터 2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정조 13년(1789)에 정조가 서산대사의 공훈을 크게 평가하여 유교식 사액사당으로 해남 대흥사 내 표충사와, 묘향산 보현사 내 수충사(酬忠祠)를 건립하였다. 이어 두 사당에 친필편액을 내리고 매년 봄과 가을에 제수와 축문을 보내 국가제향을 봉행하도록 하였다. 서산대사를 추모하는 국가제향은 대흥사 표충사, 보현사 수충사에서 봄·가을로 설행되어 오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단절되었다.
국가제향으로서의 맥은 끊어졌지만 대흥사는 매년 서산대사의 기일에 대재(大齋)를 이어왔으며, 1993년부터는 탄신일을 기해 봉축대재로 형태를 바꾸어 지냈다. 1999년부터 대흥사는 ‘서산대사호국정신선양회’를 설립하고 불교식으로 서산대제를 봉행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2009년 이후부터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와 함께 국가제향의 위상으로 서산대제를 복원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였다.
마침내 2012년부터 대흥사는 매년 봄, 서산대사 탄신 시기에 맞춰 유교식 국가제향과 불교식 법요식을 복합한 특색 있는 의식으로 서산대제를 봉행해 오고 있다. 유교식 국가제향은 대흥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춘추시향축문(春秋時享祝文)」, 「표충사향례홀기(表忠祠享禮笏記)」와 국가 제향 차림도인 「진설도(陳設圖)」에 근거하여 복원하였다.[1]곽아람, “서산대제(西山大祭)”, 디지털해남문화대전. http://haenam.grandculture.net 2017년부터는 유교식 예제관 행렬 재현을 추가하고, 서산대사의 기일에 맞춰 추계 제향을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의례 진행 과정과 제단 차림
서산대제는 대사의 위패를 이운하는 예제관 행렬을 시작으로 국가제향으로 봉행된다. 예제관 행렬이 절 안으로 들어오면 표충사에서 제례가 시작된다. 제례는 전폐례(奠幣禮), 초헌례(初獻禮), 독축(讀祝),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음복례(飮福禮), 철변두(撤籩豆)의 순으로 진행한다. 국가제향이 끝나면 불교식 다례 법요식이 거행된다. 먼저 제향 봉행을 고하는 증명을 청한 다음 국민의례, 삼귀의 제창 및 반배, 반야심경 봉독, 추모 예포 및 묵념, 서산·사명·처영 ‘구국 삼화상(救國 三和尙)’ 영전 헌다(獻茶)가 이어진다. 다음으로 서산대사 행장기와 봉행사, 기념사 낭독에 이어 총무원장 법어,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에서 보내온 추도사, 격려사 등에 이어 사홍서원으로 불교식 다례를 마무리한다.
서산대제의 설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단상에는 중앙의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향 우측과 좌측에 서산대사의 제자인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 대사와 뇌묵 처영(雷默處英, ?-? ) 대사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홀기(笏記)에 의거하여 제물을 진설한다. 영정과 위패의 앞쪽에 각각 제단을 마련하고, 신주를 중심으로 제물을 차린다. 대나무로 만든 제기는 양기(陽器)라 하여 연밥·대추·잣·밤·한과·인절미 등의 마른 음식을 담고, 나무로 만든 것은 음기(陰器)라 하여 우무·미나리·군두부·흑임자·메밀국수·해조류 등의 물기 있는 음식을 담아 올린다.[2]구미래(2020. 4. 3.), 「[구미래의 불교 세시의례] 〈6〉 서산대제(西山大祭)」,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
대흥사 서산대제의 의의
서산대제는 불교가 억압받던 시대에 국가로부터 불교의 역할과 위상을 인정받은 상징적인 의례이다. 국가의 위난에 능동적으로 앞장서 백성과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서산대사와 그 제자들의 호국불교 정신은 오늘날 대흥사 서산대제로 현현한다.
서산대제의 특징은 무엇보다 유교 제(祭)와 불교 재(齋)의 결합이다. 불교의 위패와 유교의 신주가 함께하고, 육류·해물·오신채를 쓰지 않고 술 대신 청수를 올린다. 사찰 안에 마련된 사당에서 주요 의식이 진행되고, 승려와 유학자가 함께 참여한다. 조선 유교국가로부터 인정받은 호국불교는 서산대제를 통해 유·불 복합 의례라는 독특한 문화유산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림 2〉 춘계 서산대제의 표충사 영정과 제단(대흥사, 2022)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곽아람, “서산대제(西山大祭)”, 디지털해남문화대전. http://haenam.grandculture.net
- 주석 2 구미래(2020. 4. 3.), 「[구미래의 불교 세시의례] 〈6〉 서산대제(西山大祭)」,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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