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운흥사 영산대재는 임진왜란에서 순국한 승병(僧兵)과 의병(義兵)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경내 일대에서 봉행하는 천도의식이다.이다. 영산재(靈山齋)에서는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당시의 법회[靈山會相]를 오늘에 재현하는 방식으로 영가를 천도한다. 현재의 운흥사 영산대재는 영조 6년(1730)쯤부터 매년 음력 2월 8일에 치르던[1]이날 임진왜란 때 승병이 가장 많이 죽은 날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참조. 운흥사, “영산대재”. http://www.unheungsa.net/page/sub2_4 대규모 천도재를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운흥사 영산대재의 재일(齋日)은 본래 음력 2월 8일이었으나, 현재 음력 2월 27일로 변경하여 설행해 오고 있다. 영산재에 사용되는 괘불탱화는 1730년에 의겸 스님과 그 제자들이 제작한 것으로 석가모니불과 그 권속들을 묘사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이다. 현재 이 탱화는 궤와 함께 보물 제1317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림 1〉 제 293회 운흥사 영산대재 바라 작법무(2023)(운흥사)
임진왜란과 운흥사 영산대재
운흥사는 경남 고성 와룡산 향로봉 중턱에 위치한 천년고찰이다. 임진왜란 때 지역 승병의 본거지였다. 구전에 의하면 당시 운흥사에는 사명대사의 지휘 아래 6천여 명의 승군이 머무르며 왜군과의 전투를 준비한 곳이라고 한다. 또한 이순신 장군이 사명대사와 수륙양면 작전을 의논하기 위해 세 차례나 운흥사를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호국성지로서의 운흥사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운흥사는 진주성이 함락되고 난 후에 왜군과의 전투에서 후퇴하면서 크게 피해를 당한 것으로 보이나, 임란 후에 곧 복원되어 규모나 세력이 방대한 사찰로 급속히 성장하였다.[2]김경수(2012), 「고성 운흥사의 역사와 임진왜란 관련성 및 소장 목판 연구」, 『경남연구』 6, 창원: 경남연구원, 113~117쪽. 운흥사가 전쟁 후에 바로 재건되고, 영산재와 같은 큰 불교의례를 행하는 사찰이 된 것은 임진왜란에서 죽은 영혼들을 천도하기 위한 국가적 관심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의례의 구성과 진행 과정
운흥사 영산대재는 경내 대웅전 옆에 마련된 특설 무대에서 어산 원명스님을 비롯한 함안수륙재보존회 스님들의 집전으로 진행된다. 의식은 영산재 1부와 법요식, 산사음악회와 영산재 2부 순으로 구성된다.
영산재 1부는 재를 올리는 불사의 자리에 삼신(법신·보신·화신)을 모셔 오는 의식인 삼신이운(三身移運)을 시작으로 대령(對靈), 관욕(灌浴), 신중작법(神衆作法) 순으로 진행된다. 이어 법요식은 개회 선언과 명종(鳴鐘), 삼귀의(三歸依), 반야심경(般若心經), 묵념, 헌화, 봉행사, 격려사, 축사, 청법가, 법어, 축원, 사홍서원(四弘誓願)으로 진행된다.
법회에 이어 산사음악회가 시작된다. 고성연예인협회 실버합창단, 고성 트롯 고고장구, 어울림 모듬북 팀과 대중가수가 출연하여 신명을 펼친다. 산사음악회 다음으로는 영산재 2부로 복청게(伏請偈), 천수바라(千手哱囉), 도량게(道場偈), 거불(擧佛), 유치·청사(由致·請詞), 사다라니바라 (四陀羅尼哱囉), 회심곡(回心曲), 관음시식(觀音施食), 봉송(奉送) 순으로 봉행하고[3]주영미(2023. 4. 18.), 「고성 운흥사, 제293회 호국영령 영산대재 봉행」, 『법보신문』. http://www.beopbo.com 영산대재를 회향한다.
운흥사 영산대재의 의의
운흥사 영산대재는 조선 후기부터 전해오는 불교의례로 사찰 개별의례로는 역사가 오래되었다. 임진왜란에서 왜적과 싸우다 숨진 승병, 지역 의병, 관군 등을 추모하기 위해 시작한 의례는 현재 매년 1,000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의식으로 발전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운흥사 영산대재는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불교 천도의례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림 2〉 제 293회 운흥사 영산대재 산사음악회 트롯 고고장구(2023)(운흥사)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이날 임진왜란 때 승병이 가장 많이 죽은 날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참조. 운흥사, “영산대재”. http://www.unheungsa.net/page/sub2_4
- 주석 2 김경수(2012), 「고성 운흥사의 역사와 임진왜란 관련성 및 소장 목판 연구」, 『경남연구』 6, 창원: 경남연구원, 113~117쪽.
- 주석 3 주영미(2023. 4. 18.), 「고성 운흥사, 제293회 호국영령 영산대재 봉행」, 『법보신문』. http://www.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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