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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불사

가사불사(袈裟佛事)는 재가자가 삼보의 존재인 출가자에게 법의(法衣)인 가사를 새로 지어 올리는 의례를 말한다. 가사(袈裟)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법복이자, 위대한 용맹심의 징표이기에 가사 공양은 그 자체로 공덕이 한량없다고 여겨왔다. 현재 가사불사는 윤달을 대표하는 불교 세시의례로 자리잡고 있다.
〈그림 1〉 큰스님들께 가사를 공양하는 모습(수덕사, 2018)
가사불사의 역사와 윤달 가사불사 가사불사는 부처님 재세 시기로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음식, 가사, 약, 침구는 재가자들이 출가수행자에게 올리는 사사공양(四事供養)으로서 중요한 위상을 갖는다. 이는 생존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와 직결되기에, 승보(僧寶)에게 바치는 가장 귀중한 공양으로 존숭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가사는 법의(法衣)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현하는 옷이자 출가자의 위의(威儀)를 드러내는 표상이므로, 가사불사에는 더욱 깊은 의미가 부여되어 왔다. 한반도에서도 불법이 전래된 초창기부터 승려의 가사를 봉헌하는 불사가 왕실에서부터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공덕행으로 인식되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왕실의 가사 시주가 일상적 의례로 정착되었는데, 1356년 공민왕 부부가 봉은사에서 태고 보우(太古普愚, ?-1382) 스님의 법문을 청해 들은 후 은발우와 정교하게 수놓은 가사를 시주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가사불사는 이어졌다. 태종은 1408년 빈전에서 ‘화엄삼매참(華嚴三昧懺)’ 법회를 열고 108명의 스님에게 가사와 발우를 시주하였다. 문종은 즉위하던 해(1450년)에 값비싼 옷감을 시주해 가사불사에 사용토록 했고, 세종의 대상(大祥) 때는 스님 8백 명에게 발우와 능라단, 황색 명주, 가사를 시주하였다. 이 외에도 전국의 큰 사찰마다 가사불사가 행해지면서 이를 위한 불자들의 시주가 있었다는 사실 등이 『조선왕조실록』에 전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록으로는 가사불사가 ‘윤달’에 행하는 의례라고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윤달 가사불사는 기록으로 전하는 때보다 후대에 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윤달에 가사불사를 행하게 된 까닭은 두 가지 요인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 윤달에 불사가 많이 이루어졌기에 가사불사도 이에 포함되어 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윤달이 들면 왕실에서 다양한 불사를 행하고, 왕이 사찰에 행차하여 불공을 올렸다. 이는 모두 윤달이라는 비일상적인 시간을 종교적으로 해석하여 공덕을 쌓으려는 행위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사불사는 점차 윤달에 행하는 의례로 변화되어 간 것으로 추측된다. 둘째, 윤달에 수의(壽衣)를 짓는 민간의 풍습과 연계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민간에는 ‘수의를 미리 만들어 놓으면 장수한다’는 믿음이 있다. 부모를 위해 윤달에 수의 짓는 풍습이 스님을 위해 옷을 만드는 가사불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윤달에 윗사람을 향해 ‘옷 만들어 바치는’ 의식이 집중되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1]구미래(2020. 5. 23.), 「[구미래의 불교 세시의례] 〈9〉 윤달의 가사불사」. 『불교신문』. https://www.ibulgyo.com 현행 가사불사 의례 소개 윤달이 든 해마다 통도사에서는 재가자가 출가자에게 가사를 올리는 오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통도사는 부처님과 자장율사의 친착가사(親着袈裟)를 모시고 있어, 윤달이면 부처님과 조사의 법을 가사에 담아 전국의 대덕 스님들께 보시를 올리는 것이다. 보통 입재에서 회향까지 40~50일간을 둔다. 이는 실제 사중(寺中)에서 가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 기간에는 영산전(靈山殿)에 가사당(袈裟堂)을 설치해 임시 편액(扁額)을 걸고, 발을 쳐서 결계하여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다. 가사당에는 소임을 쓴 방(榜)을 붙여 놓고 도편수스님의 지도 아래 편수스님과 양공보살(良工―)들이 정성껏 가사를 짓는다. 가사불사의 회향일이 돌아오면, 이운식부터 진행한다. 가사당에서 설법전까지 향과 번, 연(輦)을 선두로 하여 스님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그 뒤로 가사를 두 손으로 높이 받든 수많은 불자가 따른다. 이운된 가사는 설법전 불단에 안치되고 곧 대종사스님이나 방장스님이 증명하는 점안의식이 진행된다. 점안의식이 끝나면 통도사 강원 학인 스님들이 불자들을 대신해 여러 큰스님들에게 가사 공양을 올린다. 새 가사를 받은 스님들은 사부대중이 정성으로 올린 가사를 받아 이마에 정대하고 “훌륭하다. 해탈의 옷이여 더할 나위 없는 복전의(福田衣), 내가 지금 이 가사를 받아 머리에 이었으니 태어나는 세상마다 항상 이 옷을 입을 것”이라는 화답 게송을 내린다.[2]하성미(2023. 4. 11.), 「통도사 계묘년 윤달 가사불사 회향법회」, 『현대불교』. https://www.hyunbulnews.com
가사불사의 공덕 『불설가사공덕경』에서는 ‘가사불사를 발원하는 이는 천 가지 재앙이 눈 녹듯 소멸되고, 조성에 동참한 이는 백 가지 복이 구름일 듯 일어난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가사불사에 동참했다가 가피를 입은 이야기는 수없이 구전되고, 현재에도 직접 경험했다는 불자들의 증언이 존재한다. 삼보의 한 존재인 승보(僧寶)의 몸을 보호하고 부처님의 수행을 표상하는 의복을 지어 공양하는 가사불사의 공덕이 무량할 수밖에 없다.
〈그림 2〉 가사를 받아 정대하는 스님들(수덕사, 2018)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구미래(2020. 5. 23.), 「[구미래의 불교 세시의례] 〈9〉 윤달의 가사불사」. 『불교신문』. https://www.ibulgyo.com
  • 주석 2 하성미(2023. 4. 11.), 「통도사 계묘년 윤달 가사불사 회향법회」, 『현대불교』. https://www.hyunbu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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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에 가는 날
    도서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 서울: 조계종출판사 | 2014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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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정각 | 서울: 운주사 | 2001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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