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재(預修齋)는 죽기 전에 미리 자신의 재를 치러 이번 생의 과보를 갚아 나감으로써 죽어서 극락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예수재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미리〔豫〕 닦는〔修〕재(齋)’인데, 생전에 자신의 재를 올려 공덕을 닦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부분의 재의식은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를 위하여 그 천도(薦度)를 빌어주는 타행의례인데, 예수재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스스로 왕생극락을 기원하며 자신의 죄업을 닦아가는 재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자행의례로 볼 수 있다.
〈그림 1〉 예수재 괘불과 중앙 설단(마곡사, 2014)(마곡사)
예수재의 역사
중국의 당대(唐代)에는 칠칠재(49재) 같은 천도재(薦度齋)가 민간의 불교의례로 정착되어 있었는데, 이 시기에 『예수시왕생칠경(預修十王生七經)』의 편찬과 함께 산 자들이 자신의 재를 미리 지내는 풍습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는 도교의 영향으로 명부세계를 다스리는 열 명의 왕[十王]이 인간의 선악을 심판한다는 시왕사상의 성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의례는 시왕를 모시고 미리 자신의 업보를 씻음으로써 극락왕생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널리 확산되어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시왕신앙이 성행하고 『예수시왕생칠경』이 전래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시기에 예수재도 함께 행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1]구미래, “예수재”,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
중국에서는 본래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거행되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재를 올리는 개인이 날짜를 정해 비정기적으로 행해 왔다. 조선후기가 되면 여러 재자(齋者)가 함께 재를 행하는 방식으로 확대되고, 재일(齋日)도 사후 복덕 짓기와 관련된 세시풍속이 많은 윤달로 고정되어 갔다.
19세기 중반에 편찬된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당시 광주(廣州) 봉은사(현 서울 강남)에서 행해진 윤달 예수재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인기였는지 엿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광주(廣州)의 봉은사(奉恩寺)에는 늘 윤달이 되면 도성의 여인들이 앞다투어 와서 불공을 드리고 탑전에 돈을 놓는다. 윤달이 다 가도록 이어지니, 이처럼 하면 극락세계로 돌아간다고 여겨 사방의 여인들이 물밀듯이 다투어서 모인다. 서울과 지방의 사찰에 대부분 이런 풍습이 있다.[2]국립민속박물관 편(2021), 『조선대세시기Ⅲ』,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224쪽. “俗宜嫁娶, 又宜裁壽衣, 百事不忌. 廣州奉恩寺, 每當閏月, 都下女人, 爭來供佛, 置錢榻前, 竟月絡續, 謂如是則歸極樂世界. 四方婆媼, 奔波競集, 京外諸刹, 多有此風.”
여기에서 여인들이 올렸다는 불공은 윤달에 행해진 극락왕생을 위한 축원이라는 점에서 바로 예수재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봉은사의 예수재는 현재 서울시무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어 아직도 활발히 전승되고 있다. 본래 윤달에만 행하던 의식을 그 전승과 보존에 힘쓰고자 횟수를 늘려 매년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봉행하고 있다.
예수재의 의례적 특징
예수재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명부에서 빌린 돈으로 생명을 사서 나왔으므로, 죽기 전에 이 빚을 갚아야 한다는 관념을 바탕으로 한다. 『예수천왕통의(預修天王通儀)』 「십이생상속(十二生相續)」에 따르면 육십갑자(六十甲子)에 따라 개인이 읽어야 할 책의 권수와 금액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갑자생(甲子生)의 경우 5만 3천관의 흠전(欠錢)과 함께 17권의 간경(看經)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례에 동참한 재자(齋者)들은 명부의 창고를 맡고 있는 고사(庫司)에게 자신의 띠에 해당하는 만큼의 지전(紙錢)과 경전을 바친다. 그러고 나면 그 증거로 합함소(緘合疏)라는 소를 받게 되는데, 이를 반으로 찢어 한 조각은 불사르고 나머지 한 조각은 본인이 간직하다가 죽을 때 관에 넣는다. 그 재자의 사후에 시왕명부에서는 불태워진 조각과 지금 죽은 자가 간직한 조각을 대조한 후 맞으면 그 공덕을 인정받아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극락왕생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예수재에서는 다른 재에 비하여 시왕과 시왕명부 관리들을 향한 경배와 공양의례가 강화되어 있으며, 지전을 바치고 함합소를 받는 행위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예수재의 수행적 의미
예수재는 그 이름의 ‘미리[預] 닦는다[修]’라는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기수행을 점검하고 선행(善行)을 발원하는 의례를 지향한다. 또한 많은 경전에서 “예수(預修)하고자 하거든 방생부터 먼저 하라.”라고 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극락왕생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한 보시행으로 공덕을 쌓는 의례이기도 하다.[3]구미래, “예수재”,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 특히 자신의 노력으로 스스로를 구제하는 의례라는 점에서 궁극적인 불교수행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림 2〉 예수재 고사단 기도(마곡사, 2014)(마곡사)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구미래, “예수재”,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
- 주석 2 국립민속박물관 편(2021), 『조선대세시기Ⅲ』,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224쪽. “俗宜嫁娶, 又宜裁壽衣, 百事不忌. 廣州奉恩寺, 每當閏月, 都下女人, 爭來供佛, 置錢榻前, 竟月絡續, 謂如是則歸極樂世界. 四方婆媼, 奔波競集, 京外諸刹, 多有此風.”
- 주석 3 구미래, “예수재”,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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