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서 조왕(竈王)은 부엌에 머물면서 불을 다스리고 집안의 안녕을 수호하는 신이다. 불교에서는 민간과 도교에 보이는 조왕신앙을 포용·흡수하여 ‘조왕기도’, ‘조왕불공’이라는 의식으로 전승한다. 『불설조왕경(佛說竈王經)』과 『불설환희조왕경(佛說歡喜竈王經)』에서는 조왕이 경사를 부르고, 악귀와 만병을 물리친다고 하여 신중(神衆)의 면모를 강조하고 있다.
사찰에서는 매일 아침과 사시마지 전에 조왕단 앞에서 간략히 기도를 올린다. 조왕기도는 이렇게 일상의 의례로 나타나지만, 매년 섣달그믐에는 이보다 큰 규모로 여법하게 의식을 갖추고 공양을 올리기도 한다.
〈그림 1〉 조왕탱화(봉은사, 2020)(봉은사)
조왕신의 역할
조왕의 역할에 대해 『석문의범(釋門儀範)』(안진호, 1935)에는, 부엌을 지키는 일뿐만 아니라 ‘인간사를 엄정히 살펴 선악을 가리는 신[檢察人事分明善惡主]’이라 적었다. 이는 『포박자(抱朴子)』(갈홍, 중국 동진시대)에서 ‘매월 그믐밤 조왕이 옥황상제에게 죄를 고해, 죄가 큰 자는 수명을 3백일 감하고 가벼운 자는 3일 감한다’고 한 내용에 근거한다. 조왕이 하늘에 올라가 인간의 죄를 고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사찰의 조왕탱화에는 조왕이 머리에 관을 쓰고 문서를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옥황상제에게 인간의 죄를 보고하는 관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포박자』 이후에는 조왕의 승천을 매달이 아닌, 일 년에 한 번으로 여기게 되었는데, 이로써 매년 섣달그믐에 집중적인 조왕숭배 풍속이 성행하게 되었다.
일상의 조왕기도, 섣달그믐의 조왕기도
조왕단은 공양간 아궁이 뒷벽에 조왕탱화를 걸거나, ‘나무조왕대신(南無竈王大神)’이라고 쓴 위목(位目)을 세워 마련한다. 탱화 속의 조왕은 머리에 관을 쓰고 문서를 든 남성의 모습이며, 아궁이 땔감을 대는 담시역사(擔柴力士)와 음식을 만드는 조식취모(造食炊母)를 좌우에 거느리고 있다. 공양간이 현대화되면서 아궁이 위 조왕단도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찰 공양간에는 조왕단을 모시고 있다.
예전에는 아침밥을 다 지으면 조왕에게 기도를 올린 다음 큰방으로 들였고, 부처님께 올릴 마지(摩旨)도 불기(佛器)에 퍼서 조왕단에 먼저 예를 갖춘 다음 내가기도 하였다. 사시마지 때면 조왕단에도 마지를 올리거나, 솥뚜껑을 열어놓고 절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송광사에서는 매일 아침 조왕단에 마지를 올린 뒤 마지뚜껑을 열고 죽비를 친다. 그러면 주방의 모든 이들이 일손을 멈추고 합장배례로써 공경의 예를 표한다.
진관사에서는 섣달그믐에 아궁이와 가마솥이 있는 전통 공양간에서 조왕기도를 올린다. 후원 살림을 맡은 스님은 부뚜막에 공양물을 차려놓고 조왕의 자비와 은혜를 찬탄하며 ‘조왕청’을 염송하며 조촐한 기도를 올린다. 이후 주지스님과 여러 재자들이 공양간에 모여 조왕을 향해 축원문을 낭송한다.
이날 진관사 조왕단에는 조왕의 위목을 모셔두고, 두 개의 커다란 가마솥과 부뚜막 위에 공양물을 차린다. 쌀·보리·수수·팥·콩·조 등을 켜켜이 쌓아 만든 조왕편을 시루째 가마솥 솥뚜껑 위에 올리는데, 부엌의 신에게 오곡을 바침으로써 풍요와 오행의 조화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또 다른 솥뚜껑에는 기름진 음식을 즐기는 조왕을 위해 부각·두부부침·녹두전을 비롯해 갖가지 나물과 과일을 올린다.
범어사의 경우에도 섣달보름에 조왕기도를 올린다. 이날 저녁 천왕문에서 사천왕기도를 올리고 나면, 사부대중이 함께 공양간으로 이동해 조왕을 향한 기도와 축원을 이어간다. 스님들의 공양간인 상후원과 불자들의 공양간인 하후원에 빠짐없이 공양물을 차려놓고 차례로 기도를 올린다. 모든 공양간에서 조왕기도를 마치고 나면 동참재자들은 떡국을 나누어 먹고 회향한다.[1]구미래(2021. 4. 30.), 「[사찰후원의 문화사] 〈7〉 부뚜막의 신, 조왕」, 『불교신문』. https://www.ibulgyo.com
사찰 조왕기도의 의의
조왕은 공양간을 삿된 침입으로부터 지켜내는 신중의 역할과 함께, 인간의 죄를 감시하는 엄정한 판관의 책무를 맡았다. 이런 신격을 섬기는 조왕기도는 공양간을 신성한 영역으로 여기게 함으로써 사찰 공동체의 건강에 이바지한다. 또한 조왕에게 부여된 선악 감시의 기능은 공양의 시간마다 수행자에게 삼독(三毒)의 경계를 되새기게 해 주며, 동시에 자신에게 음식이 닿기까지 만들어진 무수한 은혜에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내게 한다.
〈그림 2〉 조왕기도(진관사, 2021)(진관사)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구미래(2021. 4. 30.), 「[사찰후원의 문화사] 〈7〉 부뚜막의 신, 조왕」, 『불교신문』. https://www.ibulgyo.com
관련기사
-
칠석기도매년 음력 7월 7일, 칠석날이면 사찰에서는 자손들의 번영과 가족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칠성신을 향해 칠성기도’를 올린다. 칠성신은 북두칠성을 가리키는데, 사찰 칠성기도는 별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관장한다는 도교적 신앙관념을 포용하여 불교 세시의례화한 것이다. 〈그림 1〉 칠석기도 봉행(월정사, 2015)(월정사) 칠성신앙의 불교적 수용 2세기 중반, 아홉 개의 별을 믿는 인도의 구요신앙(九曜信仰)은 불교와 함께 중국에 전래되어 도교의 북극성신앙(北極星―)과 결합하게 된다. 그 결과 8세기 후반에... -
송구영신 법회사찰에서는 섣달그믐에 송구영신법회·제야도량·포살법회 등의 이름으로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는 법회를 연다. 섣달그믐은 제석(除夕)·제야(除夜)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제(除)’는 ‘해 바뀔 제’이다. 따라서 이날의 세시의례는 한 해를 마감하는 날이라는 데 초점이 있다. 〈그림 1〉 송구영신 법회 타종식(조계사, 2023. 1. 1.)(조계사) 기록으로 보는 제야의 세시 풍습 섣달그믐에는 재앙을 쫓고 밝은 기운으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벽사진경(辟邪進慶) 풍습이 다양하게 전한다. 이날 불을 환히 밝혀 놓고 밤을 새...
더보기 +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
불교 세시풍속의 전승양상
-
사찰전승 세시풍속의 유형별 전승양상과 특성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