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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관회

팔관회는 우리 민족의 고유 민속신앙과 불교의 팔관재계(八關齋戒)가 습합되어 전해진 불교행사이다. 팔관재계의 ‘관(關)’은 금한다는 뜻으로 여덟 가지 죄를 막아서 범하지 않음을 뜻하고, ‘재(齋)’는 하루 오전 한 끼만 먹고 오후에는 먹지 않으며 마음의 부정을 맑게 하는 의식을 가리키고, ‘계(戒)’는 몸으로 짓는 허물과 그릇됨을 금하여 방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림 1〉 팔관회의 팔관재계수계식 모습범어사, 2022)(부산광역시불교연합회)
팔관회의 기원과 역사 팔관회(八關會)는 인도에서 성립된 팔계재(八戒齋)라는 수행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팔계란 출가자의 계율인 사미십계(沙彌十戒) 중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헛된 말 하지 말고, 음주하지 말라’는 기본 5계에 ‘사치하지 말고, 높은 곳에 앉지 말며, 때 아닌 때에 먹지 말라’는 세 가지 계율을 포함한 것이다. 팔관회는 중국불교에 와서 3세기부터 팔관재(八關齋)라는 말로 불리다가, 남북조시대에 이르러 재가신도들의 중요한 불교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이때부터 ‘계를 지킨다’는 의미를 넘어 치병(治病)·위령(慰靈)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행해졌다. 당대(唐代)에 이르면 사람들이 모여 사찰에서 반승(飯僧)을 하며 밤새 범패를 연주하고 분향과 헌화를 했다고 한다. 재의 규모가 대중법회로 확장된 모습이 역력하다. 우리나라에서 팔관회는 신라시대부터 연등회와 함께 정기적으로 거행되었던 불교의례이자 민속행사였다. 진흥왕 33년(572)에 죽은 사졸들을 위해 팔관회를 거행했다고 하여 위령제의 성격도 갖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 이르면 팔관회는 국가의례로 확립된다. 이때 팔관회가 궁중정재로 편입되면서 위령제의 기능이 희미해지고 왕실에 대한 찬미와 축수 의례로 변모되었다. 또한 당시 공연되었던 가무백희나 산대잡극 등의 내용을 비추어 볼 때, 본래의 금욕의례적 성격에 더하여 유희적, 축제적 특징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조를 연 세력은 고려문화의 청산 차원에서 팔관회를 최우선의 철폐 대상으로 지목하였다. 또한 성리학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 전통신앙을 모두 음사(淫祀)로 규정하고 통제하기 시작하여, 팔관회가 포섭하고 있던 토속적 산천신앙 역시 타파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태조 원년 이후 중동팔관[1]중동이란 음력 11월을 가리킨다. 고려의 팔관회는 매해 음력 10월에는 서경에서, 11월에는 개경에서 열렸는데, 이 개경 팔관회를 달리 중동팔관회라고 불렀다.에 대한 기사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아 팔관회는 조선 건국 직후부터 철폐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행사에서 기원하여 고려문화의 총체적 행사가 되었던 팔관회는, 조선시대에 다시 그 국가의례적 성격을 잃고 재가신자의 수행방법인 팔관재계의 형태로 회귀하게 되었다.[2]구미래(2013), 「팔관회의 현대적 계승과 복원」, 『불교학연구』 35, 서울: 불교학연구회 / 구미래, 팔관회,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 부산지역 불교계의 팔관회 의례 구성 현대 팔관회는 서울·대전·제주·부산·대구·나주 등지에서 복원 또는 재현되었으나 부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회성 행사[3]서울의 경우 2회.에 그쳤다.[4]김미숙(2013), 「팔관회의 복원과 계승의 현대적 의의」, 『동아시아불교문화』 15, 경주: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58-59쪽. 부산의 팔관회는 2000년 10월에 부산광역시불교연합회에서 주최하여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봉행되고 있다. 부산광역시불교연합회는 매년 음력 중양절(9월 9일)을 회향일로 삼아, 범어사에서 3일 동안 팔관회를 봉행해 오고 있다. 첫째 날 ‘선재동자 팔관재계수계법회’와 ‘마정수기[5]마정수기는 큰스님께서 어린 동자에게 이마를 어루만지며 이 아이가 미래의 부처님이 될 것임을 증명하는 의식이다. 법회’를 봉행하며 미래 세대들이 불자로서 인연을 맺는 계기를 마련한다. ‘선재동자 수계법회’는 선재동자문화전승단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여러 원로스님께서 삼화상을 맡아 팔재계를 수계한다. 이어 영유아 마정수기 법회도 이어진다. 둘째 날 오후부터 부산불교신자회 및 부산시정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호국기원법회’를 봉행한다. 이어 한국전쟁 당시 해인사에 숨어든 북한군 토벌 목적의 폭격 명령을 거부하여 팔만대장경과 가람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6]이하경 (2016. 8. 1.), 「[김영환 장군] 불탈뻔한 팔만대장경을 지킨 한 남자 이야기」,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 이야기를 주제로 백희가무(百戱歌舞)[7]가무백희라고도 하며, 과거 나라의 각종 행사에서 연행되던 노래, 춤, 기예 등의 연희를 총칭하는 말.가 펼쳐진다. 마지막 날에는 순국선열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호국영령위령재’가 봉행되고, 불자들이 고려복식을 차려입고 수계를 받는 ‘팔관재계수계법회’가 재현된다.
팔관회 전승의 필요성 고려시대의 수많은 불교의례 중에서 팔관회만큼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개설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팔관회는 5백 년에 이르는 고려 역사 가운데 불과 22년의 공백기만 있었을 뿐, 큰 단절 없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중요한 의례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팔관회를 향한 관심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부산불교연합회가 매년 고려시대의 팔관회를 복원, 재현해 그 기본정신을 계승해 온 점은 의미 깊다. 팔관회를 통하여 지계(持戒)와 호국사상이 오늘날에 지속되도록 불교계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림 2〉 팔관회의 호국영령위령재(범어사, 2022)(부산광역시불교연합회)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중동이란 음력 11월을 가리킨다. 고려의 팔관회는 매해 음력 10월에는 서경에서, 11월에는 개경에서 열렸는데, 이 개경 팔관회를 달리 중동팔관회라고 불렀다.
  • 주석 2 구미래(2013), 「팔관회의 현대적 계승과 복원」, 『불교학연구』 35, 서울: 불교학연구회 / 구미래, 팔관회,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
  • 주석 3 서울의 경우 2회.
  • 주석 4 김미숙(2013), 「팔관회의 복원과 계승의 현대적 의의」, 『동아시아불교문화』 15, 경주: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58-59쪽.
  • 주석 5 마정수기는 큰스님께서 어린 동자에게 이마를 어루만지며 이 아이가 미래의 부처님이 될 것임을 증명하는 의식이다.
  • 주석 6 이하경 (2016. 8. 1.), 「[김영환 장군] 불탈뻔한 팔만대장경을 지킨 한 남자 이야기」,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
  • 주석 7 가무백희라고도 하며, 과거 나라의 각종 행사에서 연행되던 노래, 춤, 기예 등의 연희를 총칭하는 말.

관련기사

관련자료

  • 팔관회의 현대적 계승과 복원
    학술논문 구미래 | 불교학연구 | 35 | 서울: 불교학연구회 | 2013 상세정보
  • 팔관회의 복원과 계승의 현대적 의의
    학술논문 김미숙 | 동아시아불교문화 | 15 | 경주: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 2013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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