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분절은 음력 7월 15일에 행하는 불교 5대 명절 중 하나로, 삼악도에서 고통에 헤매는 영혼을 천도하는 날이다. 이날 사찰에서는 신도들의 조상과 유주무주 고혼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재의식인 ‘우란분재(盂蘭盆齋)’를 행한다. 민간에서 흔히 ‘백중’이라고 불리는 우란분절은 90여 일에 걸친 스님들의 하안거 해제일이기도 하다. 불자들은 긴 시간 수행에 정진한 스님들의 공력으로 지옥에 떨어진 조상영가가 구제된다고 믿는다.
〈그림 1〉 우란분재 관음시식(해인사, 2023)(해인사)
우란분재의 유래와 역사
하안거가 끝나는 날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우란분재를 행하는 내력은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한 분인 목련존자와 관련된다. 어느 날, 목련존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의 죄업으로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부처님께 어머니를 구할 방법을 여쭈어, 안거를 마친 스님들께 정성껏 공양을 올리면 어머니가 천상에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말씀을 듣는다. 이에 목련존자는 하안거를 마치는 날, 시방의 여러 대덕스님을 청하여 모시고 갖은 공양을 올려 지옥에 떨어진 자신의 어머니를 극락왕생토록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우란분재는 6세기경 중국 양나라 무제가 동태사(同泰寺)에서 처음 개회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당나라 시기에는 민속적 종교행사로 정착되었고, 현재에도 중국을 비롯한 한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불교의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우란분절에 재를 크게 열고 스님들께 공양하는 의식도 여법하게 행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유학자들의 비판으로 스님께 공양을 올리는 의식은 다소 축소된 감이 있으나, 조상천도를 위한 우란분재에는 백성들이 여전히 많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15세기 성현의『용재총화(慵齋叢話)』에 ‘7월 15일은 백종이라 하여 절에서 백 가지 꽃 열매를 모아 우란분재를 베풀었는데, 서울에 있는 비구니 암자에서는 더욱 성행하여 부녀자들이 곡식을 올리며 돌아가신 어버이의 혼령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다.’[1]『용재총화』 권2. 고 기록하고 있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조선시대 이후 우란분재는 한국 고유의 민속 절기인 백중과 함께 설행된 특성을 보여준다.[2]김상영(2009), 「우란분재의 의미와 設行 역사」, 『불교학연구』22, 김포: 불교학연구회, 201쪽.
이처럼 우란분절은 효를 중시하는 전통사회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돌아가신 조상을 지옥에서 구제하고 싶은 민중적 발원에 기대어 지금까지도 강력하게 전승되고 있는 불교 세시의례 중 하나이다.
현행 우란분절의 재의식 절차
원래 우란분절의 조상천도재는 칠월 보름에 하루 동안 치렀지만, 근래에는 칠월 보름을 회향일로 삼고, 49일 이전부터 칠칠재로 치르는 경우가 많다.
조계사의 우란분절은 보통 오전 9시 일주문에서 시련(侍輦)으로 시작한다. 이후 대웅전으로 옮겨 대령·관욕, 상단불공을 설행하고, 큰스님의 법문을 경청한 다음 관음시식을 행한다. 법당에서의 의식을 모두 마친 신도들은 바깥 도량으로 나와 사전에 인출한 ‘부모은중경’ 사본을 머리에 이고 스님들을 따라 연꽃이 만개한 도량을 따라 요잡의식을 봉행한다. 마지막으로 소대 앞에서 발원문과 위패 등을 태우며 의식을 마친다. 조계사에서는 며칠 후 ‘생명살림 방생법회’를 연이어 열어, 지옥의 영가에서부터 작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생명이 부처님의 가피 속에 안녕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행사를 우란분절과 연계하여 지속해 오고 있다.
우란분절의 불교 세시의례적 의의
우리나라에서 연중 가장 규모가 큰 불교행사로 ‘부처님오신날’ 다음으로 ‘우란분절’을 꼽는다. 그만큼 조상의 왕생천도를 기원하는 후손의 발원이 크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조상의 천도를 기원하는 사찰행사는 정초와 추석의 합동천도재에서도 확인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명절차례의 성격이 짙다. 반면 우란분절의 합동천도재는 목련존자가 그 어머니를 구한 이야기와 강하게 결합하여 불교적 효 실행의 본격적인 실천의 장으로 작동하고 있다.
우란분절 회향 소전의식(조계사)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용재총화』 권2.
- 주석 2 김상영(2009), 「우란분재의 의미와 設行 역사」, 『불교학연구』22, 김포: 불교학연구회,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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