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음력 7월 7일, 칠석날이면 사찰에서는 자손들의 번영과 가족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칠성신을 향해 칠성기도’를 올린다. 칠성신은 북두칠성을 가리키는데, 사찰 칠성기도는 별이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관장한다는 도교적 신앙관념을 포용하여 불교 세시의례화한 것이다.
〈그림 1〉 칠석기도 봉행(월정사, 2015)(월정사)
칠성신앙의 불교적 수용
2세기 중반, 아홉 개의 별을 믿는 인도의 구요신앙(九曜信仰)은 불교와 함께 중국에 전래되어 도교의 북극성신앙(北極星―)과 결합하게 된다. 그 결과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에 새로운 불교 성수신앙(星宿―)인 치성광여래신앙(熾盛光如來―)이 탄생한다. 밝기가 한량없는 북극성의 특성을 담아 여래의 명호를 ‘치성광’이라 하였다. 치성광신앙은 다라니(陀羅尼)를 염송하여 재앙의 소멸과 복을 기원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당시 유행하던 밀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한국에는 10세기 초반 이전에 치성광여래와 구요신앙이 들어와 있던 흔적이 보인다. 고려시대 치성광여래신앙은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결합되고 불교와 도교가 혼재된 형태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14세기의 불화와 탑상에는 중국과는 달리 칠성과 함께 삼태육성(三台六星)과 같은 한반도 고유의 영성신앙(靈星―) 전통이 반영된 특성이 보인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구요신앙의 비중이 줄고 북두칠성이 강조되며 치성광여래와 칠성신앙의 결합이 현저해졌다. 또한 천재지변을 다스리고 재앙을 없애는 치성광여래의 비중은 줄고, 병의 치료와 수명 연장을 맡은 북두칠성으로 신앙의 무게가 점차 옮겨갔다. 또한 조선후기로 갈수록 칠성신을 부처의 지위에 오른 칠성여래로 여기게 된다.
조선후기에는 소격서와 같이 도교의식을 행하는 국가 공식기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불교에서 민간신앙화된 도교의 칠성신앙을 폭넓게 수용하여 칠성각이 사찰 내에 세워지게 된다. 조선후기에 산신과 칠성신앙이 불교와 결합하면서 사찰 공간 안에 산신각과 칠성각이 들어선 것은, 이들 신앙이 습합(習合) 과정을 거쳐 불교화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1]김용태(2019), 「조선후기 불교와 민간신앙의 공존 양상-산신·칠성 신앙의 불교화」, 『불교학연구』 61, 화성: 불교학연구회, 91-99쪽.
현행 칠성기도의 모습
1980년대까지만 해도 칠석날은 부처님오신날 못지않았다고 한다. 칠석이면 신도들이 줄을 서서 저마다 가져온 공양물을 칠성단에 차려놓고 독불공을 드렸다는 것이다. 이날 빠지지 않고 올리는 것은 국수, 명달이 실타래, 무명천으로 끊어오는 소창으로 모두 자식의 수명장수를 비는 공양물이다.
매년 음력 7월7일 칠월칠석에는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칠석기도 법회가 열린다. 서울 조계사의 경우 사부대중은 칠석날까지의 3일 기도 회향 법회를 갖는다. 사찰에서는 불자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복숭아를 나눈다. 서울 봉은사도 칠월칠석을 맞아 소원성취를 발원하는 기도를 봉행하고 경내에 서원이 담긴 복주머니를 단다.
칠석날 법회에서는 미혼 남녀의 인연을 강조하는 설법을 종종 들을 수 있는데, 칠석은 칠성신뿐만 아니라 견우성·직녀성을 섬기는 날이기도 한 까닭이다. 까치와 까마귀가 몸을 이어 만들어 준 오작교를 건너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상봉하는 날로 여겨진다.
불교 세시의례 칠석기도의 의미
칠성신을 따로 모신 칠성각은 우리나라 사찰에서만 볼 수 있다. 고대부터 이어오던 북두칠성 신앙이 불교와 습합한 것이다. 한편, 칠석의 민간풍습은 사라졌지만 사찰의 칠성기도는 지속되고 있고, 미혼남녀의 소중한 인연을 맺어주는 칠석법회도 확산되고 있다.
‘칠성의 수명장수’와 ‘칠석의 견우와 직녀 만남’의 의미가 자연스레 결합하여 칠석이 수복(壽福)과 남녀 인연을 모두 비는 날이 되었고, 칠성신 또한 이러한 기도를 모두 해결해 주는 존재로 좌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칠석날은 불교에서 전통문화의 견인차는 물론, 전통의 현대적 창조까지 실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2]구미래(2020. 8. 15.), 「[구미래의 불교 세시의례] 〈14〉 칠석의 칠성기도」, 『불교신문』. https://www.ibulgyo.com
〈그림 1〉 칠석날 복숭아 나눔(조계사, 2019)(조계사)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김용태(2019), 「조선후기 불교와 민간신앙의 공존 양상-산신·칠성 신앙의 불교화」, 『불교학연구』 61, 화성: 불교학연구회, 91-99쪽.
- 주석 2 구미래(2020. 8. 15.), 「[구미래의 불교 세시의례] 〈14〉 칠석의 칠성기도」, 『불교신문』. https://www.ibulgyo.com
관련기사
-
조왕기도민간에서 조왕(竈王)은 부엌에 머물면서 불을 다스리고 집안의 안녕을 수호하는 신이다. 불교에서는 민간과 도교에 보이는 조왕신앙을 포용·흡수하여 ‘조왕기도’, ‘조왕불공’이라는 의식으로 전승한다. 『불설조왕경(佛說竈王經)』과 『불설환희조왕경(佛說歡喜竈王經)』에서는 조왕이 경사를 부르고, 악귀와 만병을 물리친다고 하여 신중(神衆)의 면모를 강조하고 있다. 사찰에서는 매일 아침과 사시마지 전에 조왕단 앞에서 간략히 기도를 올린다. 조왕기도는 이렇게 일상의 의례로 나타나지만, 매년 섣달그믐에는 이보다 큰 규모로 여법하게 의식을 갖추... -
원통전 칠성도원통전 칠성도는 관세음보살좌상이 봉안된 감실형 불단 뒤편, 오른쪽에 봉안되어 있다. 세로 183㎝, 가로 270.5㎝의 비단 바탕에 치성광불과 그 권속을 3단으로 배치한 군도(群圖) 형식의 불화로 1897년 화승 4명에 의해 탑전(塔殿)에서 그려졌다. 그림 중앙에 치성광불을 크게 그리고, 무릎 좌우에 일광보살, 월광보살을 두고 칠불을 좌우에 나누어 그렸다. 하단은 자미대제를 중앙에 두고 좌우필성과 이십팔숙을 배치하였으며, 네 모서리에는 사천왕을 그렸다. 동방천왕 앞에는 태산노군, 북방천왕 앞에는 개덕진군이 있다. 치성광...
더보기 +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
절에 가는 날
-
불교세시풍속
-
한국의 불교의례1
-
불교 세시풍속의 전승양상-조계사 세시풍속을 중심으로-
-
사찰전승 세시풍속의 유형별 전승양상과 특성
-
조선후기 불교와 민간신앙의 공존 양상-산신・칠성 신앙의 불교화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