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십송율』에 수록된 재일 관련 내용(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재일(齋日)은 재가신도가 출가자를 본받아 수행하는 정진일(精進日)이다. 세속의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날만큼은 사중의 스님들처럼 계를 엄격하게 지키며 수행자처럼 생활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 행동을 삼가고, 지난 일을 반성하며 좋은 일을 행한다. ‘재(齋)’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포사다(poṣadha; upavāsa; upavasatha)’, 팔리어 ‘우포사다(Uposadha)’를 번역한 것으로 ‘삼가다’, ‘부정(不淨)을 피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고대 인도에는 15일마다 집회를 갖고 각자의 죄과를 참회하는 의식이 있었다. 이날이 되면 단식하며 정계(淨戒)의 법을 지켰는데, 불교에서 이 풍습을 수용하여 재계(齋戒)로 발전시켰다. 이후 15일의 재일이 분화하여 육재일(六齋日: 음력 매월 8・14・15・23・29・30일)로 정착되었고, 여기에 1・18・24・28일을 더하여 십재일(十齋日)로 확대되었다.
재일에는 하루 동안 계를 지켜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재일에서 14일과 15일, 29일과 30일이 연달아 있는 것은 보름 단위로 계를 잘 지키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포살(布薩)에서 기인한다. 포살의식에 동참하는 재가자는 ‘팔관재계(八關齋戒)’라는 계를 받았다. 계는 산목숨을 죽이지 말고, 도둑질을 하지 말고, 음행을 하지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말고, 술을 마시지 말고, 춤과 노래를 하지 말고, 화려하게 꾸민 자리에 앉지 말고, 때가 아닐 때에 먹지 말라는 총 8개의 금지 조항으로 구성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십송율』 등 여러 율장에서 육재일 등에 대하여 설파한 내용이 확인된다. 『불설사천왕경(佛說四天王經)』에는 재일마다 사천왕(四天王)과 그 대신이 세간을 순찰하며 사람들의 선악을 관찰한다는 흥미로운 내용의 설화를 전한다. 매월 음력 8일 사천왕이 사자(使者)를 내려보내 마음으로 하는 생각, 입으로 하는 말, 몸으로 하는 행실의 선악을 관찰한다. 14일에는 태자(太子)를 보내어 관찰하게 하고, 15일에는 사천왕이 직접 내려오고, 23일에는 사자가 다시 내려오고, 29일에는 태자가 다시 내려오고, 20일에는 사천왕이 내려온다. 사천왕은 중생을 살펴 길흉의 과보를 시행한다. 이러한 설화에 따라 그날은 몸가짐을 조심하고 선업을 짓는 것이다.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에서는 재일을 지키는 의미를 설명하면서 십재일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 설해져 있다. 재일에는 중생의 업과가 결정되므로 악업을 삼가야 한다고 역설하며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거나, 형상을 보거나, 지장경(地藏經)을 읽을 것을 권장한다.
한편 동아시아권에서는 ‘재계(齋戒)’에 대하여 3일 동안 오후에 금식(禁食)하고, 7일 동안 범행(梵行)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불교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재일의 의식에서는 수계나 포살보다는 불공이나 기도, 법회가 주로 행해지고 있다. 한국불교의 재일 신앙은 십재일 사상의 변형으로 보기도 하며, 대체로 재일마다 특정한 불보살을 결합시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1일은 정광불, 8일은 약사불, 14일은 현겁천불 또는 보현보살, 15일은 아미타불, 18일은 지장보살, 23일은 대세지보살, 24일은 관세음보살, 28일은 비로자나불, 29일은 약왕보살, 30일은 석가모니불을 연관하여 원불(願佛)로 삼는다. 이를 총칭하여 ‘십재일불(十齋日佛)’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찰에서 특히 많이 지켜지는 재일은 8일 약사재일, 15일 미타재일, 18일 지장재일, 24일 관음재일 등이다. 그러나 이중 미타재일은 보름법회로 대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지장재일과 관음재일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일 법회로 정착되어 있다. 초하루법회와 보름법회의 경우 정광재일이나 미타재일로 지정하여 준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월례 정기법회 형식으로 불공을 올리고 있다. 혹은 육재일 및 십재일의 정계 정신을 중시하여 철야정진하는 수련회를 개최한다.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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