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재부터 육재까지는 명부전에서만 진행된다. 앞서 입재 때 이미 영가를 모시고 상단에 고했기 때문에 육재 동안은 상단 의식을 반복하지 않는다. 이때에는 집중적으로 시왕각청[1]시왕 및 그 종관권속 하나하나를 따로 불러 도량에 모시고 공양을 받도록 청하는 의식이다.을 비롯한 중단 의식을 행한다. 시왕을 비롯하여, 26위의 판관과 37위의 귀왕, 2부의 동자와 12사자 등 수많은 명부권속을 청하여 빠짐없이 공양한다.
명부 성중을 청하여 공양하는 것이 예수재의 가장 핵심적인 의식이다. 다른 재와 달리 예수재에서는 시왕과 그 명부 성중이 의례의 주된 대상이 되기 때문인데 그와 관련한 유래가 있다. 『예수천왕통의』에 따르면 옛날 병사왕은 예수재를 49번이나 올렸으나 저승에 잡혀와 고문을 받았다. 그가 했던 예수재에서는 시왕에 대한 공양만 있었고 명부의 종관권속들에게는 공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병사왕은 앞으로는 시왕뿐만 아니라 모든 명부 종관권속에게도 공양을 올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종관권속의 명목을 받아 세상으로 돌아왔다. 병사왕은 그로부터 명부 성중 모두에게 빠짐없이 공양을 올려 그 공덕으로 미륵을 친견하고 성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시왕 및 그 종관권속 하나하나를 따로 불러 도량에 모시고 공양을 받도록 청하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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