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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련사예수재 어산단

청련사는 안정사(安靜寺) 시절 경제어산(京制魚山) 동교(東郊)계 범패를 대표하는 곳이었다. 그 전통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도성 근처의 청련사가 왕실 종친이나 상궁들의 후원을 받아 온 내력과 무관하지 않다.[1]청련사 불화 화기에 왕실과 불교계의 매개자였던 상궁들이 시주자로 참여한 기록이 전한다. 또한 1854년 법당 중창의 대시주자로 정조의 사위와 그 손자가 동참하였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고종 때는 대웅전 아미타삼존상 개금불사 때 고종의 후궁인 귀인양씨가 동참했다고 한다.(유근자(2019), 「양주 청련사의 예수재와 조선후기 명부전 도상」, 『동국사학』 제66집, 서울: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19-221쪽) 과거 청련사에서는 종친과 궁녀의 배후에 있는 왕가의 현증수복과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의례를 자주 설행해 왔을 것이기에 의식을 집전하는 수준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추론이 가능한 청련사의 범맥은 근대기 능해 스님(1892-1979)에서 시작된다. 이후 덕봉(1911-1994)·춘담(1915-1960)·청호 스님(1915-1999)으로 이어졌고 벽파 스님(1939-2011)을 거쳐 백우 스님(1943-2015)으로 이어졌다. 이후 1·2세대 스님들이 열반하여 상주스님만으로는 범패 전승이 다소 힘들어지자, 백우 스님은 외부에서 범패와 작법무 강주로 활동하던 상진 스님을 청련사 범패 교육장으로 초청했다. 2015년 백우 스님이 입적하고 현재까지 상진 스님이 청련사 어장으로서 불교의례를 총괄하고 있다. 현재 청련사에는 가장 원로이신 해경, 지홍 스님이 증명을 맡고, 중진인 벽산, 심곡 스님은 인례와 사회를 맡아 의례를 진행한다. 어장 상진 스님 다음 세대로는 바라지로 거진 스님이 활동하고 있고, 효능, 일심, 일효, 혜각, 일진, 지휴, 덕산, 묘각, 미건 스님 등이 참여하고 있다.
〈표 1〉 현재 활동하고 있는 청련사 어산단
어산장상진 스님
수석 바라지거진 스님
작법과 범패효능, 일심, 일효, 일진, 혜각, 지휴, 덕산, 묘각, 미건 스님 등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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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석 1 청련사 불화 화기에 왕실과 불교계의 매개자였던 상궁들이 시주자로 참여한 기록이 전한다. 또한 1854년 법당 중창의 대시주자로 정조의 사위와 그 손자가 동참하였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고종 때는 대웅전 아미타삼존상 개금불사 때 고종의 후궁인 귀인양씨가 동참했다고 한다.(유근자(2019), 「양주 청련사의 예수재와 조선후기 명부전 도상」, 『동국사학』 제66집, 서울: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19-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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