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에서는 1년에 한 차례, 자신을 위한 혹은 가족을 위한 불교 신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49일간의 육바라밀의 수행과 실천을 목표로 하는 기도 법회가 있다. 이른바, 살아있는 동안 미리 공덕을 닦아 사후에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 의식, 즉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이다.
매년 음력 9월 9일 중양절을 생전예수재 회향일로 삼고, 그에 앞서 7일 간격으로 매주 7차례의 기도법회를 연다. 발원을 주제로 한 입재식 봉행을 시작으로 초재부터 칠재인 회향식에 이르는 생전예수재 기간 동안 예수재 동참재자들은 쌀과 향, 꽃과 과일, 차와 등불의 육법공양을 올리고, 『금강경(金剛經)』을 독송하는 수행을 한다. 특히 봉은사에서는 이를 가리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육바라밀 실천을 염두에 둔 49일간의 수행정진이라고도 부른다. 과거 윤달이 있는 해에만 간소하게 치러져 왔던 봉은사 생전예수재는 2016년 주지 원명 스님이 부임한 이후,〈신중작법-괘불이운-조전점안-예수재도량건립(운수단)-사자단-상단-중단-고사단-마구단-함합소-봉송회향〉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불교의례 전형을 계승한 형태로 현재까지 설행되고 있다.[1]안현숙(2021),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52호 봉은사 생전예수재」, 『봉은판전』vol. 167, 서울: 봉은사.
2016년부터 매년 생전예수재가 봉행되었고, 관련 학술 세미나도 몇 차례 개최되는 등 봉은사는 전통적인 불교의례의 연구와 체계적인 교육을 목표로 하는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2017년에는 생전예수재 원형의 보존과 전승을 위한 사단법인 생전예수재보존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불교 무형문화유산으로서 봉은사 생전예수재의 역사와 가치가 세간에 주목되기에 이르렀고, 2019년 4월 봉은사 생전예수재는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52호 지정되었다. 또한 생전예수재보존회 주관으로 관련 연구 성과를 묶은 단행본이 간행되었으며,[2](사)생전예수재보존회 불교신행문화연구소 편(2017), 『생전예수재 연구』, 서울: 민속원. 봉은사 생전예수재 의례집이 수정·보완되어 새롭게 발간되었다.[3]원명·인묵·법안(2020), 『생전예수시왕생칠재의찬문』, 서울: (사)생전예수재보존회. 한편 서울시 기록화사업의 일환으로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52호 생전예수재 기록영상〉이 제작되었고, 이에 관한 상세한 해설과 전문 작가의 사진을 실은 생전예수재 도서가 출간되었다.[4]성청환(2021), 『생전예수재』, 서울: 서울특별시.
불교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가치가 퇴색해 가는 시대에 이와 같은 봉은사의 관심과 노력은 생전예수재의 복원과 계승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한국 불교의례의 전통 보전과 유지에 소중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안현숙(2021),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52호 봉은사 생전예수재」, 『봉은판전』vol. 167, 서울: 봉은사.
- 주석 2 (사)생전예수재보존회 불교신행문화연구소 편(2017), 『생전예수재 연구』, 서울: 민속원.
- 주석 3 원명·인묵·법안(2020), 『생전예수시왕생칠재의찬문』, 서울: (사)생전예수재보존회.
- 주석 4 성청환(2021), 『생전예수재』, 서울: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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