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奉恩寺)는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번지 수도산(修道山)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음을 닦아(修心) 도를 이룬다(得道)’ 는 산 이름처럼 오랜 세월동안 수행과 전법의 도량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절은 통일신라시대인 794년(원성왕 10)에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하였다. 당시 국가에서는 봉은사를 비롯한 7개의 사찰에 성전(成典)이라는 관청을 두어 가람의 조성과 운영을 관장하였다.[1]당시 성전사원 대부분은 수도 경주 인근에 있으므로 지금의 봉은사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고려시대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보물로 지정된 1344년(충혜왕 5)의 은입사향로를 소장하고 있다.
조선시대 절의 역사는 자세하게 전한다. 1498년(연산군 4)에 성종의 비 정현왕후(貞顯王后)가 견성사(見性寺)를 크게 중창하고 ‘성종의 은혜를 받들어 모신다’ 는 의미에서 봉은사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봉은사는 조선 최고의 사찰로 급부상하였다. 그 중심에 중종의 비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와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 1509~1565) 대사가 있었다. 문정왕후는 어린 명종을 대신해서 섭정을 펼치면서 조선불교의 일대 부흥을 도모하였다. 1550년(명종 5)에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두 종단을 부활시켜 봉은사를 선종수사찰(禪宗首寺刹), 봉선사를 교종수사찰(敎宗首寺刹)로 삼았다. 보우대사를 선종의 총책임자로 임명하고 1552년에는 우수한 승려를 선발하는 승과(僧科)를 개최하였다. 보우대사는 조선불교의 중흥조였다. 훗날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위대한 고승 서산 휴정(西山休靜, 1520~1604)대사가 이 승과에서 급제하였다. 또한 1561년의 승과에서는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대사가 급제하였고, 이후 대사는 12년간 봉은사에서 수행하였다.[2]한상길(2022), 「봉은사의 호국신앙과 수륙재」, 『무형문화연구』제7호, 서울: 불교의례문화연구소, 123-127쪽.
1562년(명종 17) 선릉의 동쪽 기슭에 있던 옛 봉은사 터에 중종의 정릉(靖陵)을 마련하면서 절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국가에서 이전을 맡으면서 웅장한 가람을 새로 지었으므로 당시 절은 서울·경기 사찰 가운데 으뜸이 되었다.
조선시대 봉은사는 예수재와 수륙재 등의 다양한 불교의례를 개설하였다. 봉은사의 전신인 견성사는 일찍이 광평대군을 추복(追福)하는 재사(齋寺) 역할을 하면서 왕실의 원찰로서 다양한 불교의례를 진행하였다.[3]탁효정(2011), 『조선시대 왕실원당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ⅴ쪽; 2018, 「조선시대 봉은사 수륙재의 역사적 전개」, 『동양고전연구』제73집, 서울: 동양고전학회, 125-130쪽. 강호선(2015), 「조선전기 왕실원찰 견성암의 조성과 기능」, 『서울학연구』제59호, 서울: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1-30쪽. 봉은사는 이러한 불교의례 전통을 계속 이어나갔고, 1840년(헌종 6) 무렵 절의 생전예수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1911년에는 서울과 경기도의 80여개 말사를 관장하는 본사가 되었다. 1914년에는 한강에 배를 띄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몰장병의 혼백을 위로하는 대규모의 수륙재를 열기도 하였다. 오늘날 봉은사는 대웅전·판전·영산전·명부전·법왕루·북극전 등 많은 전각을 갖춘 대가람을 이루고 있다. 강남의 번화가에서 도심포교 사찰로서 불법의 홍포와 불교의례의 진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당시 성전사원 대부분은 수도 경주 인근에 있으므로 지금의 봉은사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 주석 2 한상길(2022), 「봉은사의 호국신앙과 수륙재」, 『무형문화연구』제7호, 서울: 불교의례문화연구소, 123-127쪽.
- 주석 3 탁효정(2011), 『조선시대 왕실원당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ⅴ쪽; 2018, 「조선시대 봉은사 수륙재의 역사적 전개」, 『동양고전연구』제73집, 서울: 동양고전학회, 125-130쪽. 강호선(2015), 「조선전기 왕실원찰 견성암의 조성과 기능」, 『서울학연구』제59호, 서울: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21-30쪽.
관련기사
-
삼화사 소개삼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이다.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에 있다. 창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삼화사사적(三和寺事蹟)』의 신라 선덕여왕대(재위 632-646) 자장이 세웠다는 설, 『강원도지(江原道誌)』에 흥덕왕 4년(829) 삼선(三禪) 창건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삼척군지』의 신라 경문왕 4년(864) 품일조사(品日祖師)가 ‘삼공사(三公寺)’를 세웠다는 설 등이 대표적이다. 현존하는 유물인 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 제1292호)의 후면 명문과 삼층석탑(보물 제1277호)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 -
진관사 소개진관사는 북한산 둘레길에 위치한(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길 73)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의 말사이다. 「진관사사적기(津寬寺事蹟記)」에 의하면 고려 현종 2년(1011)에 진관대사(津寬大師)를 위하여 국왕이 직접 창건했다고 전하고 있다. 현종이 즉위하기 이전 천추태후(天秋太后)의 살해 위협을 피해 진관 스님이 있던 신혈사(神穴寺)에서 출가승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인하여 현종은 1009년 목종(穆宗)이 승하한 후 왕위에 올라 스승인 진관 스님을 위하여 진관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진관사에 수... -
백운사 소개아랫녘수륙재 설행 사찰인 백운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이 사찰의 본래 이름은 청운사였다. 1936년 3월에 권오재가 마산시 교방동 489번지에 창건하였다. 이후 여러 스님이 주석했으며, 1965년에는 벽봉 스님을 주지로 추대하여 주석하였다. 벽봉 스님은 1966년에 창건주 권오재로부터 청운사를 인수하여 절을 크게 일으켰다. 1967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보유자 월주 스님에게 괘불 제작을 의뢰하여 괘불을 조성하고, 괘불점안 및 수륙재를 봉행하였으나, 비가 너무...
-
약사사 소개인천수륙재 설행 사찰인 약사사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3동 만월산에 위치한 한국불교 화엄종 소속의 사찰이다. 고려시대 만월산에는 항상 10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정진하고 있다고 해서 백인사(百人寺)라는 절이 있었다. 백인사는 고려 때 개국사(開國寺)로 창건하였다가 바뀌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주안사로 유지되다가 국가에서 유교문화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풍토로 인하여 성종 임금 때 절이 폐쇄되는 비운을 맞았다. 수행정진하던 스님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청정도량은 폐허가 되어 잡초만 무성한 채 무심한 세월 속에 묻혀버렸다... -
용주사 소개용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로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화산 기슭(용주로 136)에 자리한 사찰이다. 정조 대왕이 부친 사도세자의 능을 수호하고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마련한 능침사(陵寢寺)이자 조포사(造泡寺)였다. 정조는 1789년에 당시 양주에 있던 부친의 능(영우원)을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현륭원(顯隆園)이라 이름을 고쳤다. 그리고 곧 주위에 조포사(造泡寺) 건립을 확정하였다. 조포사란 왕실의 능이나 원에 소속되어 나라 제사에 쓰이는 두부를 제조하여 공급하는 사찰이다. 용주사는 현륭원의 조포사 겸 원찰로서 17... -
부여의 불교문화백제는 도읍을 사비성(충남 부여)으로 옮기면서 불교는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서산 지역에 조성된 대표적인 불교 유적인 서산 마애불은 사비성 도읍기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불교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인물은 제26대 성왕이다. 성왕은 사비성 천도를 단행하며 불교를 국가 이념으로 이용하고자, 양나라의 문물을 적극 수용하며 많은 사찰을 도성 안에 창건했다. 중국의 사서인 『주서(周書)』에서는 백제에 “사탑이 매우 많았다.”고 하였다. 그 말을 증명하듯이 현재까지 부여 관내에서는 총 30곳의 백제 때 절터가 확인되었다. ...
-
보원사 소개보원사(普願寺)는 충남 서산군 운산면 내포 가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사적 제316호(지정연월일 1987. 07. 10.)로 지정된 보원사지 내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이다. 이 사찰은 백제부터 시작되어 1,5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나 백제 이래의 고찰(古刹)임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지(寺誌)나 사적기(事蹟記) 등의 문헌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창건연대는 이 사지(寺址)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이 6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아마 이 무렵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
무위사 소개무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이다. 전남 강진군 월출산에 있다. 신라 진평왕 39년(617) 원효대사가 관음사로 창건하였다. 875년(헌강왕 1) 도선(道詵) 국사가 중건하여 갈옥사(葛屋寺)라 고쳐 불렀으며, 대웅보전, 보광전, 미타전, 수륙전, 대장전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이야기의 전거를 찾을 수는 없다. 고려 정종 원년(946) 효공왕 9년(905) 선각(禪覺) 국사가 3창하여 모옥사(茅屋寺)라 하였다. 조선 태종 7년(1407) 무위사가 천태종(天台宗) 17자복사(資福寺) 중의 하나가 되었... -
조선시대 봉은사예수재세속에서는 혼인하기에 적당하고, 또 수의(壽衣)를 짓기에 적당하다고 여긴다. 무슨 일을 해도 좋다. 광주(廣州)의 봉은사(奉恩寺)에는 늘 윤달이 되면 도성의 여인들이 앞다투어 와서 불공을 드리고 탑전에 돈을 놓는다. 윤달이 다 가도록 이어지니, 이처럼 하면 극락세계로 돌아간다고 여겨 사방의 여인들이 물밀 듯이 다투어서 모인다. 서울과 지방의 사찰에 대부분 이런 풍습이 있다. 위의 내용은 윤달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나오는 문장이다. 19세기 중반에 편찬된 이 책에 나오는 광주 봉은사는 현재 서울 강...
-
근현대 봉은사예수재1911년 조선총독부는 사찰령 및 사찰령시행규칙을 발표․제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는 조선 불교계를 통제하기 위해 사찰의 재산권, 주지 임면권 등을 장악하였으며, 그 시행의 편의를 위해 30개의 본사와 그에 속한 말사의 형태로 전국 사찰을 구분하였다. 봉은사는 이 제도가 시행된 1911년부터 서울과 경기도 일원의 80여 사암을 관장하는 본사로 지정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봉은사는 선종수사찰(禪宗首寺刹)이었던 조선시대의 위상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수도권의 80여 사암을 대표하는 본사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 ...
-
봉은사예수재의 개요봉은사에서는 1년에 한 차례, 자신을 위한 혹은 가족을 위한 불교 신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49일간의 육바라밀의 수행과 실천을 목표로 하는 기도 법회가 있다. 이른바, 살아있는 동안 미리 공덕을 닦아 사후에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 의식, 즉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이다. 매년 음력 9월 9일 중양절을 생전예수재 회향일로 삼고, 그에 앞서 7일 간격으로 매주 7차례의 기도법회를 연다. 발원을 주제로 한 입재식 봉행을 시작으로 초재부터 칠재인 회향식에 이르는 생전예수재 기간 동안 예수재 동참재자들은 쌀과 향, 꽃과 과일, 차... -
청련사 소개청련사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개명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본래는 서울 하왕십리 종남산 무학봉 아래에 소재하였으나, 기존 자리에 아파트단지가 개발되면서 가람을 양주로 옮겨 2010년 중창하였다. 과거 청련사는 조선 왕궁과 가까웠던 만큼 왕실의 원찰과 도성 비보사찰의 기능을 담당했다고 전해진다. 청련사는 신라 흥덕왕 2년(827)에 창건되어 안정사(安定寺, 安靜寺)로 불렸다. 이후 조선 태조 4년(1395) 왕사(王師) 무학대사가 쇠락한 가람을 중수하고 주석(駐錫)한 것으로 알려진다. 무학대사가 절을 중창한 이후 명칭을 청련... -
봉은사 생전예수재1. 봉은사 생전예수재의 역사와 현황 도심 속 천년고찰 수도산 봉은사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奉恩寺)는 서울시 강남구의 수도산(修道山) 자락에 자리한 도심 속 전통사찰이다. 원래는 조선 제7대 세조(재위 1455~1468)의 아들 광평대군(廣平大君)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된 견성암(見性庵)이 전신이다. 이후 조선 제9대 성종(재위 1469~1494)을 모신 선릉(宣陵)의 능침사찰(陵寢寺刹) 견성사(見性寺)가 되면서 사격을 높였고, ‘왕의 은혜를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에서 봉은사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의 위치로 옮겨와 크게 중...
더보기 +
관련자료
더보기 +
-
조선시대 왕실원당 연구
-
조선전기 왕실원찰 견성암의 조성과 기능
-
조선시대 봉은사 수륙재의 역사적 전개
-
봉은사의 호국신앙과 수륙재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