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천왕통의(預修薦王通儀)』는 예수재의 기원을 중점적으로 다룬 글로, 예수재 의례집인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의 서두나 말미에 합본되어 전하고 있다. 글의 서두에는 장육암(藏六庵) 육화(六和)가 쓴 것으로 밝히고 있으나, 그가 누구인지 어느 시대 사람인지, 구체적인 저자 연보와 제작연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예수천왕통의』는 내용상 2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조선시대 간행본들에 나타나는 유형이다. 유사국(游沙國) 병사왕(瓶沙王, 빈비사라왕)이 예수재를 설행하게 된 이유와 명부 종관권속 명목을 알려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석문의범』(1935년)에 보이는 유형이다. 조선시대 간행본 내용에 당태종과 관련된 수생전(壽生錢)[1]전생에 명부에 진 빚. 고사가 추가되어 있다. 후자의 경우 근대에 들어 갑자기 나타나고 있어, 육화 스님이 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수천왕통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⑴ 『명도전(冥道傳)』 [2]미상.에 다음과 같이 이른다. 북인도 유사국 병사왕이 25년 동안 49번에 걸쳐 예수재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저승으로 끌려갔다. 예수재에서 시왕에 대한 공양만 올렸을 뿐, 시왕의 종관들과 그에 따른 권속들의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 죄였다.
⑵ 병사왕은 명부 종관권속의 명목(名目)을 몰라 공양을 올리지 못했던 연유를 아뢰고, 그 명목을 받아 세상에 나가면 예수재를 올바로 봉행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병사왕이 명부로부터 받아온 종관명목에는 지장대성으로부터 각배종관까지 모두 259위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나(육화)의 사견으로는 272위임을 밝힌다. 종관 2위와 일체사자 11위가 빠졌다.
⑶ 병사왕은 저승을 다녀온 후 예수재를 제대로 봉행하여 미륵대성을 친견하고 수다원(須陀洹)을 증득하여 성자가 되었다.
⑷ 명부 종관명목이 『염라대왕수기경(閻羅大王授記經)』에도 기록되어 있다고 전하고 있으나, 내(육화)가 살펴본 바로는 현존하는 대장경에는 그러한 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⑸ 『명보기(冥報記)』[3]7세기 중반 중국 승려 당림(唐臨, 600?-659)이 지은 명계서사집. 불교의 인과응보와 업, 윤회 등의 교리를 강하게 수용하고 있다. (구미진(2021), 「동진부터 초기당대 명계서사에 나타난 명계 이미지의 특징과 변화양상」, 『중국어문학논집』, 제128호, 서울:중국어문학연구회, 193쪽)에 따르면 당나라 태종 정관 15년[4]641년. 경자년 가을, 태종이 아끼던 신하 부혁이가 죽었다. 그 전에 부혁의 친구 인균이 먼저 죽었는데 그에게 오천 냥을 빌렸던 벽적이가 그 돈을 갚을 길이 없어 애태웠다. 이에 인균이 벽적이의 꿈에 나타나 곧 저승으로 올 부혁이에게 돈을 갚아 보내주면 된다고 일러준다.
⑹ 지나가던 당태종이 이 꿈 이야기를 듣고 총애하던 부혁이의 일인지라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벽적이는 부혁이에게 인균의 돈을 보내면서 꿈 이야기를 전했다. 며칠 후 부혁이가 갑작스레 죽었다. 당태종은 부혁의 죽음을 듣고 『승만경(勝鬘經)』에 근거하여 명계의 돈인 개팔천(開八天)을 주조하여 예수재를 베풀었다. 또한 사방의 호위무사에게 명계의 돈을 허리에 차게 하고 더욱 특별히 경계하게 하였다.
⑺ 명부에서 빌려온 수생전을 환납해야 18종의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밝힌다. 더불어 명부전인 개팔천을 만들기 위해서는 앞면에 ‘개팔천’ 세 글자를 새기고 뒷면에는 상평통보(常平通寶)를 박아 금색과 은색으로 인쇄하면 된다고 한다.
⑻ 삼장법사 현장 스님이 구도하던 중에 대장경을 열람하다 『수생경(壽生經)』을 발견하고 그 경을 번역하여 세상에 널리 알렸다. 또한 예수재를 봉행하여 큰 이익을 얻고 18종의 재난을 면케 하였다.[5]노명열(2010), 「현행 생전예수재와 조선시대 생전예수재 비교 고찰」,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6-29쪽.
위의 내용 중 ⑴-⑷는 조선시대 간행본과 『석문의범』에 모두 나타나는 내용이고, ⑸-⑻은 후자에만 추가된 내용이다. ⑴-⑷는 『명도전』을 근거로 하여 병사왕의 예수재 의식과 명부 종관권속의 명목에 집중하고 있다. ⑸-⑻은 『명보기』와 현장 스님의 구도기를 근거로 하여 당태종의 개팔천(開八天) 주조와 수생경의 영험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천왕통의』는 사실 관계가 배치되거나 확인이 어려운 내용이 많다. 유사국의 병사왕은 석존께 많은 공양을 올린 빔비사라왕을 가리키는데, 빔비사라왕의 죽음과 관련된 다른 경전(『불설관무량수경』)에서는 그가 예수재를 설행하여 수다원을 증득하였다고 나오지 않았다. 또한 당태종의 경우에도, 부혁(傅奕)이라는 인물을 총애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개팔천을 주조하고 예수재를 봉행했다는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또한, 개팔천을 『승만경』[6]『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勝鬘獅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을 줄인 말이다. 경의 내용은 승만부인이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보광여래(菩光如來)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여래장 사상을 담고 있다.을 근거로 하여 주조하였다고 하나 『승만경』은 명계 돈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경전이 아니라 여래장 사상을 담은 경서이다. 이러한 내용상 허구에도 불구하고 『예수천왕통의』는 예수재의 기원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예수재 법식과 관련된 명부 위목, 개팔전, 수생경 등의 연원을 확인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전생에 명부에 진 빚.
- 주석 2 미상.
- 주석 3 7세기 중반 중국 승려 당림(唐臨, 600?-659)이 지은 명계서사집. 불교의 인과응보와 업, 윤회 등의 교리를 강하게 수용하고 있다. (구미진(2021), 「동진부터 초기당대 명계서사에 나타난 명계 이미지의 특징과 변화양상」, 『중국어문학논집』, 제128호, 서울:중국어문학연구회, 193쪽)
- 주석 4 641년.
- 주석 5 노명열(2010), 「현행 생전예수재와 조선시대 생전예수재 비교 고찰」,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6-29쪽.
- 주석 6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勝鬘獅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을 줄인 말이다. 경의 내용은 승만부인이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보광여래(菩光如來)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여래장 사상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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