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이다. 전남 강진군 월출산에 있다. 신라 진평왕 39년(617) 원효대사가 관음사로 창건하였다. 875년(헌강왕 1) 도선(道詵) 국사가 중건하여 갈옥사(葛屋寺)라 고쳐 불렀으며, 대웅보전, 보광전, 미타전, 수륙전, 대장전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이야기의 전거를 찾을 수는 없다.
고려 정종 원년(946) 효공왕 9년(905) 선각(禪覺) 국사가 3창하여 모옥사(茅屋寺)라 하였다. 조선 태종 7년(1407) 무위사가 천태종(天台宗) 17자복사(資福寺) 중의 하나가 되었으나[1]조계종 : 장흥 가지사, 낙안 징광사, 곡성 동리사, 영암 도갑사, 탐진 만덕사 / 천태종 : 태산 흥룡사, 도강 무위사, 운봉 원수사, 무안 대굴사, 장사 선운사 / 화엄종 : 장흥 금장사, 순천 향림사 / 자은종 : 능성 공림사, 광주 진국사 / 중신종 : 임실 진구사, 익주 미륵사 / 총남종 : 화순 만연사, 나주 보광사, 창평 서봉사 / 시흥종 : 고흥 적조사, 왜구의 침입으로 전소하였다. 1430년(세종 12) 효령대군을 중심으로 여러 시주자들이 참여하여 극락보전을 건립하여 현존하고 있다.[2]배종민(2001), 「강진 무위사 극락전과 후불벽화의 조성배경」, 『고문화』 58, 서울: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21-123쪽. 이 불사에는 승려들을 주축으로 일반인도 시주에 동참하였다. 참여 승려들은 세조가 지원한 도갑사 해탈문 불사에도 참여한 이들이다. 극락보전은 국보로 지정(1962.12.20.)되어 있다. 불상 벽에는 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현재는 1476년 수화승 해련(海蓮)이 그린 가로 270㎝, 세로 210㎝의 후불벽화가 남아 있고, 28점은 보존각에 보관되어 있다.
1555년(명종 10) 태감(太甘) 선사가 4창하였는데, 이때 비로전, 미타전, 영산전, 문수전 등의 전각과 승방, 요사 등은 물론이고 35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1678년(숙종 4)에 극락전 앞에 괘불대를 조성하였다. 1739년(영조 15)에는 미타전과 천불전, 시왕전만 남아 있었던 것을 해초(海超)·극잠(克岑) 등이 전각을 보수하였다.
이후 극락보전만 남아 있어 1934년 국보13호로 지정되었다가 1962년 12월 20일 재지정되었다. 1974년까지는 극락보전(국보)과 명부전, 요사채만 있었다. 1975년 벽화보존각(壁畵保存閣)과 해탈문(解脫門)·봉향각(奉香閣)·천불전(千佛殿)·미륵전(彌勒殿) 등을 중건하였다. 1991년에 산신각을 짓고 1995년에 동쪽 요사를 증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조계종 : 장흥 가지사, 낙안 징광사, 곡성 동리사, 영암 도갑사, 탐진 만덕사 / 천태종 : 태산 흥룡사, 도강 무위사, 운봉 원수사, 무안 대굴사, 장사 선운사 / 화엄종 : 장흥 금장사, 순천 향림사 / 자은종 : 능성 공림사, 광주 진국사 / 중신종 : 임실 진구사, 익주 미륵사 / 총남종 : 화순 만연사, 나주 보광사, 창평 서봉사 / 시흥종 : 고흥 적조사
- 주석 2 배종민(2001), 「강진 무위사 극락전과 후불벽화의 조성배경」, 『고문화』 58, 서울: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21-123쪽. 이 불사에는 승려들을 주축으로 일반인도 시주에 동참하였다. 참여 승려들은 세조가 지원한 도갑사 해탈문 불사에도 참여한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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