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원사(普願寺)는 충남 서산군 운산면 내포 가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사적 제316호(지정연월일 1987. 07. 10.)로 지정된 보원사지 내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이다.
이 사찰은 백제부터 시작되어 1,5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나 백제 이래의 고찰(古刹)임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지(寺誌)나 사적기(事蹟記) 등의 문헌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창건연대는 이 사지(寺址)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이 6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아마 이 무렵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광종대 왕사(王師)였던 탄문(坦文, 900-975)이 보원사에서 머물렀고, 974년 국사(國師)로 책봉된 후[1]『고려사』 세가 권2, 광종 19년(968). “승려 혜거(惠居)를 국사(國師)로 삼고, 탄문(坦文)을 왕사(王師)로 삼았다.”;『고려사』 세가 권2, 광종 25년(974) 3월. “승려 혜거(惠居)가 죽자 탄문(坦文)을 국사(國師)로 삼았다.” 이 사찰에 머물다가 입적하였다는 사실[2]고려 광종 26년(975) 3월, 탄문은 보원사에서 승도들에게 “사람의 노소는 있어도 법에는 선후가 없다”는 유훈(遺訓)을 남기고 나이 76세, 법랍 61세로 입적하였다.(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1998), 『종교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참조.)로 볼 때 고려 초기에 보원사의 사세(寺勢)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치원이 남긴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의하면 보원사는 화엄 10찰중의 하나[3]최치원(崔致遠, 857-900)이 남긴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웅주(熊州) 가야협(伽耶峽)의 보원사는 의상(義湘)을 계승한 화엄십사(華嚴十寺)중의 하나라고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이 사찰의 종파가 화엄종임을 알 수 있다. 10개 사찰은 곧 ① 중악공산(中岳公山)의 미리사(美理寺), ② 남악 지리산의 화엄사, ③ 북악 부석사, ④ 강주(康州) 가야산 해인사 및 보광사(普光寺), ⑤ 웅주(熊州) 가야협(迦耶峽) 보원사(普願寺), ⑥ 계룡산 갑사(岬寺), ⑦ 낭주(良州) 금정산 범어사, ⑧ 비슬산 옥천사, ⑨ 전주 무산[母山] 국신사(國神寺), ⑩ 한주(漢州) 부아산(負兒山) 청담사(靑潭寺) 등이다.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 불우(佛宇)조에 보원사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 남아 있어 이때까지만 해도 이 사찰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선조 10년(1577)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가 보원사에서 간행된 사실, 조선 광해군(1619)에 편찬된『호산록(湖山錄)』에 기록된 것, 그리고 숙종 8년(1682)에 제작된 『동여고비(東輿備考)』에 보원사가 표시된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에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보원사가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보원사는 하지만 눈 밝은 납자 스님들이 근근이 주석하며 그 명맥을 이어오다 2004년 12월 9일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 말사로 등록하여, 현재의 보원사(普願寺)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보원사지 내에는 5층 석탑을 비롯해 석조(보물 제102호), 당간지주(보물 제103호), 법인국사보승탑(보물 제105호), 법인국사보승탑비(보물 제106호) 등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조물이 남아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철조여래좌상, 금동여래입상, 고려철불좌상, 상평통보가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에는 보원사지금동여래입상, 보원사지5층석탑 사리장엄구, 금동여래좌상, 청동인왕상 등의 출토물이 있다.[4]보원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상왕산 보원사.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고려사』 세가 권2, 광종 19년(968). “승려 혜거(惠居)를 국사(國師)로 삼고, 탄문(坦文)을 왕사(王師)로 삼았다.”;『고려사』 세가 권2, 광종 25년(974) 3월. “승려 혜거(惠居)가 죽자 탄문(坦文)을 국사(國師)로 삼았다.”
- 주석 2 고려 광종 26년(975) 3월, 탄문은 보원사에서 승도들에게 “사람의 노소는 있어도 법에는 선후가 없다”는 유훈(遺訓)을 남기고 나이 76세, 법랍 61세로 입적하였다.(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1998), 『종교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참조.)
- 주석 3 최치원(崔致遠, 857-900)이 남긴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웅주(熊州) 가야협(伽耶峽)의 보원사는 의상(義湘)을 계승한 화엄십사(華嚴十寺)중의 하나라고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이 사찰의 종파가 화엄종임을 알 수 있다. 10개 사찰은 곧 ① 중악공산(中岳公山)의 미리사(美理寺), ② 남악 지리산의 화엄사, ③ 북악 부석사, ④ 강주(康州) 가야산 해인사 및 보광사(普光寺), ⑤ 웅주(熊州) 가야협(迦耶峽) 보원사(普願寺), ⑥ 계룡산 갑사(岬寺), ⑦ 낭주(良州) 금정산 범어사, ⑧ 비슬산 옥천사, ⑨ 전주 무산[母山] 국신사(國神寺), ⑩ 한주(漢州) 부아산(負兒山) 청담사(靑潭寺) 등이다.
- 주석 4 보원사 소개, 대한불교조계종 상왕산 보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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