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사는 2017년도부터 매년 10월 수륙대재를 개최하고 있다.[1]2020년에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취소되었다. 용주사 수륙재는 고려시대 최초의 수륙도량으로 알려진 갈양사(葛陽寺) 수륙재의 정신을 잇는 한편, 정조대왕의 명으로 개회된 1790년 용주사 무차대회(無遮大會)[2]무차대회는 차별 없이 모든 중생에게 불법과 공양을 베푸는 법회를 말한다. 수륙재는 이 무차대회에 죽은 이를 위한 천도의식이 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승속과 귀천, 유명(幽明)을 따지지 않고 모든 중생을 재회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두 개념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의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원력으로 설행되고 있다.
수륙대재는 하루 동안 진행된다. 점심 공양시간을 기준으로 오전, 오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오전에는 의례를 준비하고 공간을 정화하는 의식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오후에는 본격적으로 상위, 중위, 하위의 대상을 초정하고 공양하는 의례가 봉행된다. 의례의 마지막에는 초청한 모든 성현과 영가를 보내고 공덕을 회향하게 된다.
용주사의 수륙재는 조선후기 유일하게 국왕이 설행 주체로 명을 내린 불교재회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고려와 조선 전기에는 왕실에서 주최하여 열리는 국행수륙재가 빈번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와서는 유생들의 반발로 국행수륙재는 폐지되고, 사찰과 개인이 주체가 되는 수륙재만 열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용주사 수륙재는 왕명으로 건립된 사찰에서 왕이 직접 행차한 것은 물론, 왕실에서 직접 내린 의식물을 갖고 설행한 재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취소되었다.
- 주석 2 무차대회는 차별 없이 모든 중생에게 불법과 공양을 베푸는 법회를 말한다. 수륙재는 이 무차대회에 죽은 이를 위한 천도의식이 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승속과 귀천, 유명(幽明)을 따지지 않고 모든 중생을 재회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두 개념은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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