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수륙재는 인천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수륙재로서, 2004년 4월 6일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보유자는 부평 자원사 주지 일초 스님이다.
인천수륙재 설행은 『인천수륙재의문』을 소의로 한다. 이 의례문은 인천수륙재보존회에서 제작한 것으로, 덕주사본(1573)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를 저본으로 한다. 이 책에서 소실되어 없는 부분은 『석문의범』을 참조하여 제작하였다.[1]인천수륙재보존회(2003), 『인천수륙재의문』, 인천: 인천수륙재보존회, 참조.
인천수륙재는 수많은 전란을 겪은 고려와 조선왕조에서 민심 안정과 국가발전을 위해 국가적으로 행한 수륙재의 뜻을 이어 산자와 망자가 함께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의미로 설행된다.
의례의 절차는 타종을 시작으로 시련·대령·관욕·신중작법·괘불이운·소청사자·소청상위·소청중위·소청하위·시식·봉송·회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륙재 설행에 참여하는 어산단과 작법단은 보유자 일초 스님을 비롯한 전수생 20여 명으로 구성된다.
인천수륙재는 바닷가라는 지역적인 특징과 그 소리가 다른 지역과 두드러진 차이점을 지닌다. 타지역의 소리는 5음을 사용하는 반면, 인천수륙재는 간성이란 소리를 곁들여 6가지 소리를 낸다. 또한 회향의식에서 불려지는 일초 스님의 회심곡(回心曲)은 인천지역 서민들과 바닷가에 인접한 특성상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들의 애환을 기리는 간절한 음절로 불려진다. 이처럼 인천수륙재의 소리(범음)는 장중하며 법무 역시 매우 역동적이라 수준 높은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봉송 재차 때에 “정토길”을 여는데, 이 길가름 의식은 타지역에서 볼 수 없는 인천수륙재에서만 독특한 의식이다.[2]2022년 6월 3일 인천수륙재 보유자 일초 스님 인터뷰 내용.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인천수륙재보존회(2003), 『인천수륙재의문』, 인천: 인천수륙재보존회, 참조.
- 주석 2 2022년 6월 3일 인천수륙재 보유자 일초 스님 인터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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