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녘수륙재는 삼화사수륙재와 진관사수륙재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국가무형문화재 127호)로 지정되었다. ‘국행’을 내세우는 삼화사나 진관사의 수륙재와는 달리, 백운사는 ‘아랫녘’을 내세운다. 이 아랫녘이라는 명칭에 아랫녘수륙재가 갖는 특징이 함축되어 있다.[1]허용호(2014), 「아랫녘수륙재에서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실천민속학 연구』 제24호, 안동: 실천민속학회, 42쪽.
아랫녘[2]아랫녘은 한 지역을 기준으로 그 남쪽을 이르는 말이다. 가령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남쪽에 있는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을 가리킨다. 낙동강을 경계로 하면 그 남쪽과 동쪽의 경상도를 아랫녘이라 하고, 북쪽과 서쪽의 전라도·충청도·강원도·경기도 일원을 웃녘이라고 한다.(국립무형유산원(2017), 『아랫녘수륙재』, 서울: 민속원, 28쪽.)은 영남지역의 범음·범패승들 사이에 웃녘 소리와 구분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다. 아랫녘수륙재는 전승사적 맥락에서 보면 석봉 어장을 중심으로 한 불모산 성주사, 통영 용화사, 고성 관음사, 김해 장유암을 중심으로 전승된 통·고소리[3]·고소리는 남해안 서부 일대의 고성·통영 일원을 중심으로 하는 소릿제인데, 통영의 ‘통’자와 고성의 ‘고’자를 따서 ‘통·고소리’라고 부른다.(국립무형유산원(2017), 『아랫녘수륙재』, 서울: 민속원, 29쪽.)를 계승하고 있다.
아랫녘수륙재의 의문은 기본적으로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를 모본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구성에 있어 조금의 차이가 있다. 그 구성은 용왕재를 시작으로 입보례, 외대령, 관욕, 괘불이운, 쇄수결계, 신중대례, 각단권공, 영반, 재시용상방 등을 영산작법 이전 별의식으로 연행하고 있다. 이어서 영산작법에서 봉송까지는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의 37편을 차례로 연행하고 있다. 다만 「소청중위편」과 「소청하위편」 사이에 고사청, 조전점안 및 이운, 각단권공, 마구단권공, 설주이운 및 거량, 화청 등을 삽입하고 있으며, 마지막 봉송으로 끝을 맺고 있다.[4]국립무형유산원(2017), 『아랫녘수륙재』, 서울: 민속원, 178-179쪽.
아랫녘수륙재에서는 삼화사와 진관사의 두 수륙재에서 볼 수 없는 의식들이 몇 가지 연행된다. 예를 들어 아랫녘수륙재는 용왕재를 지내는데 이는 바닷가라는 지역적 특성상 민간의 용왕신을 모시는 의식이 수륙재에 습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른 사찰의 수륙재에서 시련으로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아랫녘수륙재는 외대령이라는 독특한 재차로 시작한다.[5]홍태한(2013), 「수륙재 전승의 지역적 다양성과 의미」, 『실천민속학연구』 제22호, 안동: 실천민속학회, 158쪽. 또한 영가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영반이나 축원의식은 국행을 강조하는 진관사나 삼화사의 수륙재와 달리 민간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마무리 절차인 삼회향이 있다. 이는 법회에 참석했던 사부대중은 물론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대중들이 함께 어우러져 법회에 사용되었던 모든 악기를 가지고 나와 회향공덕을 함께 나누고 어울림 한마당을 가지는 의식이다. 아랫녘수륙재만의 특징적인 절차라 할 수 있다.[6]허용호(2014), 「아랫녘수륙재에서 주목해야 할 몇가지」, 『실천민속학연구』 제24호, 안동: 실천민속학회, 51쪽.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허용호(2014), 「아랫녘수륙재에서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실천민속학 연구』 제24호, 안동: 실천민속학회, 42쪽.
- 주석 2 아랫녘은 한 지역을 기준으로 그 남쪽을 이르는 말이다. 가령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남쪽에 있는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을 가리킨다. 낙동강을 경계로 하면 그 남쪽과 동쪽의 경상도를 아랫녘이라 하고, 북쪽과 서쪽의 전라도·충청도·강원도·경기도 일원을 웃녘이라고 한다.(국립무형유산원(2017), 『아랫녘수륙재』, 서울: 민속원, 28쪽.)
- 주석 3 ·고소리는 남해안 서부 일대의 고성·통영 일원을 중심으로 하는 소릿제인데, 통영의 ‘통’자와 고성의 ‘고’자를 따서 ‘통·고소리’라고 부른다.(국립무형유산원(2017), 『아랫녘수륙재』, 서울: 민속원, 29쪽.)
- 주석 4 국립무형유산원(2017), 『아랫녘수륙재』, 서울: 민속원, 178-179쪽.
- 주석 5 홍태한(2013), 「수륙재 전승의 지역적 다양성과 의미」, 『실천민속학연구』 제22호, 안동: 실천민속학회, 158쪽.
- 주석 6 허용호(2014), 「아랫녘수륙재에서 주목해야 할 몇가지」, 『실천민속학연구』 제24호, 안동: 실천민속학회,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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