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사수륙재(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의 전통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삼화사에 소장되어 전하고 있는 갑사본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와 덕주사본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가 삼화사수륙재의 전통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삼화사수륙재의 특징으로는 지화제작, 설단, 장엄, 고임새 등 준비 단계부터 수륙재 의례의 전반에 걸쳐 삼화사 신도들이 적극 참여하며 소통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지고 있는 점에 있다.
의례적 측면에서의 특징으로는 ①전통을 계승하여 매년 정기적으로 설행되고 있는 점, ②수인작법 등 밀교적 특성이 보이는 점, ③방생의식, ④헌다례, ⑤금강경독송 등 특화된 의식이 설행되고 있는 점 등이 다른 수륙재와 변별성을 보인다.
〈그림 1〉삼화사수륙재 설단 배치도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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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예수재의 개요봉은사에서는 1년에 한 차례, 자신을 위한 혹은 가족을 위한 불교 신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49일간의 육바라밀의 수행과 실천을 목표로 하는 기도 법회가 있다. 이른바, 살아있는 동안 미리 공덕을 닦아 사후에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 의식, 즉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이다. 매년 음력 9월 9일 중양절을 생전예수재 회향일로 삼고, 그에 앞서 7일 간격으로 매주 7차례의 기도법회를 연다. 발원을 주제로 한 입재식 봉행을 시작으로 초재부터 칠재인 회향식에 이르는 생전예수재 기간 동안 예수재 동참재자들은 쌀과 향, 꽃과 과일, 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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