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이다.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에 있다. 창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삼화사사적(三和寺事蹟)』의 신라 선덕여왕대(재위 632-646) 자장이 세웠다는 설, 『강원도지(江原道誌)』에 흥덕왕 4년(829) 삼선(三禪) 창건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삼척군지』의 신라 경문왕 4년(864) 품일조사(品日祖師)가 ‘삼공사(三公寺)’를 세웠다는 설 등이 대표적이다. 현존하는 유물인 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 제1292호)의 후면 명문과 삼층석탑(보물 제1277호)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범일국사가 건립하였다는 설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강원도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조에는 고려 태조가 3국을 회화(會和)하고 삼화사(三和寺)로 고쳐 불렀다. 고려 말에는 동안거사 이승휴(1224-1300)가 삼화사에 가서 불경을 빌려 읽었는데, 10년 만에 모두 마쳤다. 고려 말 나옹화상이 1369년(공민왕 18)에 중창불사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태조 4년(1395)에 국행수륙재를 설행하였다. 이는 26년 전 나옹화상의 중창에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 인조 9년(1631)에 2년에 걸쳐 5종의 사적기를 편찬하였다. 현종 1년(1660)에 중대사 터로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하지만 87년이 지난 영조 23년(1747)에 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되어 그 이듬해 삼화사 옛터에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순조 23년(1823)에 두타산 산불로 약사전 철불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다시 중창되었으나 1906년 의병들의 병참기지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의해 불태워졌다. 1908년 50여 칸에 이르게 복원하였다. 하지만 1977년 시멘트 채굴을 위해 쌍용양회가 삼화사를 매각하여 1979년 옛 중대사 터에 사찰을 다시 옮겨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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