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사수륙재는 2001년 공주 갑사에서 발간된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1547)가 발견됨으로 국행수륙재 복원의 단초가 마련되었다. 2005년부터 매년 10월 3일간 수륙재를 설행하고 있다. 수륙재의 지속적 설행을 위해 2009년 3월 31일 삼화사국행수륙대재보존회를 결성하였다. 차츰 복원된 수륙재는 2013년 12월 31일 대한민국의 국가중요무형문화재(제125호)로 보유자 없는 보유단체로 진관사수륙재와 함께 지정되었다.[1]문화재청 고시 제2013-130호, 《중요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보유단체 인정), 보유자·명예보유자 인정 및 보유자 인정 해제》,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8176호, 720면, 2014-01-06.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문화재청 고시 제2013-130호, 《중요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보유단체 인정), 보유자·명예보유자 인정 및 보유자 인정 해제》,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8176호, 720면, 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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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화사수륙재삼화사수륙재는 조선 태조 4년(1395)에 건국과정에서 희생된 고려 왕씨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국행수륙재를 설행한 것으로부터 기원한다. 그 전 해인 1394년에 태조는 금자 사경 『묘법연화경』 1본과 『수륙의문』 7본을 관음굴과 삼화사, 현암사 3곳에 각각 비치하도록 하였다. 이듬해부터 해마다 봄·가을로 수륙재를 지내도록 하였다. 『태종실록』에는 태종 1년(1401) 상원사에서 수륙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태종 14년(1414)에는 수륙재 설행일을 매년 2월 15일(음)에서 1월 15일로 옮겨 연등회와 합설하게 된다... -
삼화사 소개삼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의 말사이다.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에 있다. 창건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삼화사사적(三和寺事蹟)』의 신라 선덕여왕대(재위 632-646) 자장이 세웠다는 설, 『강원도지(江原道誌)』에 흥덕왕 4년(829) 삼선(三禪) 창건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삼척군지』의 신라 경문왕 4년(864) 품일조사(品日祖師)가 ‘삼공사(三公寺)’를 세웠다는 설 등이 대표적이다. 현존하는 유물인 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 제1292호)의 후면 명문과 삼층석탑(보물 제1277호)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 -
삼화사수륙재 설행 개요삼화사수륙재는 100일전 왕실에서 수륙재에 필요한 물목 중 중요한 향을 내리는 행향사(영향축의)를 시작으로 2박 3일간의 회향의식으로 진행되었다. 현재에는 수륙재 설행 49일 전에 77재 입재를 하여 7일마다 재를 지내고, 그 중 30일 전에 행향사 의식을 거행한다. 회향은 10월 셋째주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 2박 3일에 걸쳐 설행된다. 2022년에는 코로나19로 2019년부터 공개하지 않았던 의식을 3년만에 공개하여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거행하였다. 30일전 행향사 첫째 날(10.18) : 신중작법, 괘불불패이운, ... -
삼화사수륙재의 개요삼화사수륙재(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의 전통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삼화사에 소장되어 전하고 있는 갑사본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와 덕주사본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가 삼화사수륙재의 전통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삼화사수륙재의 특징으로는 지화제작, 설단, 장엄, 고임새 등 준비 단계부터 수륙재 의례의 전반에 걸쳐 삼화사 신도들이 적극 참여하며 소통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지고 있는 점에 있다. 의례적 측면에서의 특징으로는 ①전통을 계승하여 매년 정기적으로 설행되고 있는 점, ②수인작법... -
근현대 진관사수륙재근대의 진관사 수륙재는 신문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독립신문》 1897년 9월 30일자 기사에서 어떤 스님은 아무 대신 집, 어떤 내인, 월욱이라는 스님은 서흥 군수 모씨가 진관사에서 조상의 천도재를 지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때 재를 준비하는 모습을 ‘스님들이 종이를 오려 각색의 가화(假花)를 만들고 그림도 그리며 부적도 쓰거늘.’〈잡보〉, 《독립신문》(서재필), 1897년 9월 30일자, 3면.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재를 앞두고 지화를 만들고 번과 같은 장엄물과 불화를 그리며 다라니를 쓰는 등의 모습에서 수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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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수륙재의 개요진관사에서 수륙재가 설행되었다는 기록은 1398년(태조 7)에 처음 등장한다. 1년 전인 1397년(태조 6)에는 권근(權近, 1352-1409)이 쓴 「진관사 수륙사 조성기(津寬寺水陸社造成記)」에는 진관사에서 수륙재를 지내기 위한 수륙사(水陸社) 건립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진관사에서 수륙재와 관련된 기록이 연산군대(1494-1506)까지 18건 등장한다. 1897년 ≪독립신문≫과 1916년 ≪매일신보≫에 수륙재 설행에 관한 기사가 나타난다. 1965년에 진관 스님이 사찰을 중창한 뒤 1968년에 대... -
부여 백제수륙재의 역사백제문화제는 부여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행사다. 3천 궁녀와 3충신을 위하여 추모행사를 거행할 필요성을 느낀 주민들은 부여의 유지들을 중심으로 비용을 모아 행사를 계획했다. 1955년 백제대제집행위원회를 구성,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부소산성에 제단을 설치하고 3천 궁녀와 3충신을 위하여 제향을 올렸다. 이때 부여 도성 함락 중에 강물에 몸을 던진 백제 여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수륙재를 설행했다고 한다. 백제대제집행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진행한 초기의 부여 백제수륙재에는 당시 무량사의 여러 스님들이 참가했... -
부여의 불교문화백제는 도읍을 사비성(충남 부여)으로 옮기면서 불교는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서산 지역에 조성된 대표적인 불교 유적인 서산 마애불은 사비성 도읍기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불교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인물은 제26대 성왕이다. 성왕은 사비성 천도를 단행하며 불교를 국가 이념으로 이용하고자, 양나라의 문물을 적극 수용하며 많은 사찰을 도성 안에 창건했다. 중국의 사서인 『주서(周書)』에서는 백제에 “사탑이 매우 많았다.”고 하였다. 그 말을 증명하듯이 현재까지 부여 관내에서는 총 30곳의 백제 때 절터가 확인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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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봉은사예수재1911년 조선총독부는 사찰령 및 사찰령시행규칙을 발표․제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는 조선 불교계를 통제하기 위해 사찰의 재산권, 주지 임면권 등을 장악하였으며, 그 시행의 편의를 위해 30개의 본사와 그에 속한 말사의 형태로 전국 사찰을 구분하였다. 봉은사는 이 제도가 시행된 1911년부터 서울과 경기도 일원의 80여 사암을 관장하는 본사로 지정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봉은사는 선종수사찰(禪宗首寺刹)이었던 조선시대의 위상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수도권의 80여 사암을 대표하는 본사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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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사 수륙재1. 삼화사수륙재의 역사와 현황 삼화사의 역사 대한불교조계종 삼화사(三和寺)는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두타산(頭陀山) 자락에 자리한 제4교구 본사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고려말 1369년(공민왕 18)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중창하였다. 삼화사는 고려 태조가 3국을 회화(會和)하고 ‘삼화사’로 고쳐 불렀으며, 조선 1592년(선조 25)에는 ‘중대(中臺)’라 이름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자연재해와 전쟁 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 이전과 재건을 반복하였다. 1907년 의병의 병참기지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일... -
현대의 수륙재와 예수재현대의 수륙재와 예수재는 2000년대 이후 학술적 조명과 함께 불교의례의 원형을 복원하고 불교의례로서의 문화유산적 가치로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수륙재와 예수재에 대한 무형문화재 지정 현황은 모두 7건이다. 그 가운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수륙재에는 강원도 삼화사 수륙재, 서울 진관사 수륙재, 밀양 백운사의 아랫녘 수륙재가 있고, 시도무형문화재에 인천 약사사의 인천수륙재가 있다. 예수재에는 시도무형문화재로 경남 광제사의 밀양 작약산 예수재, 서울 봉은사의 생전예수재, 경기도 청련사의 생전예수재가 있다. 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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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사수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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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사수륙재의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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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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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산과 삼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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