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사수륙재는 조선 태조 4년(1395)에 건국과정에서 희생된 고려 왕씨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국행수륙재를 설행한 것으로부터 기원한다. 그 전 해인 1394년에 태조는 금자 사경 『묘법연화경』 1본과 『수륙의문』 7본을 관음굴과 삼화사, 현암사 3곳에 각각 비치하도록 하였다. 이듬해부터 해마다 봄·가을로 수륙재를 지내도록 하였다.
『태종실록』에는 태종 1년(1401) 상원사에서 수륙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태종 14년(1414)에는 수륙재 설행일을 매년 2월 15일(음)에서 1월 15일로 옮겨 연등회와 합설하게 된다. 이때 천마산 관음굴과 대산 상원사, 거제 현암사로 일컫고 있다. 세종 6년(1424) 3월에는 태종 7년(1407)에 그 전년도 지정한 사찰 12종 242곳의 자복사(資福寺)에다 추가로 88곳을 지정했던 자복사를 모두 혁파하게 된다. 이로 미루어보아 삼화사에서는 1414년 이전 혹은 1424년까지 국행으로 설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에는 국행이 아닌 사찰 중심의 수륙재가 설행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추정할 사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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