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사회 혼란 속에서 불교의례 명맥이 희미하게 이어져 왔다. 신문기사 등 파편적인 기록을 통해 수륙재 전통이 점점이 이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전문학술영역에서 수륙재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불교학, 역사학, 민속학, 서지학, 미술사학, 음악학 등 유관 학문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성과가 축적되었다. 특히 2000년대 이후로는 수륙재의 문화유산적 가치에 주목하면서 현재 거행되고 있는 수륙재에 대한 사례 연구가 크게 진척되었다.
나아가 수륙재가 지니는 공익성, 역사성, 예술성 등이 평가되어 문화재로 지정되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2004년 ‘인천수륙재’가 지방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다.[1]〈[인천/경기]강화 청련사 탱화 등 지방문화재-기념물 지정〉, 《동아일보》, 2004년 3월 19일. 2010년대에 들어와 수륙재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재고하며 의례 원형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각계에서 일어났다. 그 결과 2013년 수륙재가 국가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으며 삼화사국행수륙대재보존회, 진관사국행수륙재보존회, 백운사아랫녘수륙재보존회가 보유단체로 최종 인정되었다.[2]〈문화재청, 수륙재 무형문화재 지정 확정〉, 《법보신문》, 2013년 12월 20일. 아울러 의례 공간에 시설하는 불화(佛畫)와 법구(法具), 의례 절차를 성문화한 의궤(儀軌)의 고판본(古版本) 등이 유형문화재로 다수 지정되었다. 따라서 불교의례적 차원을 넘어 한국의 문화전통으로서 수륙재를 보존, 계승해가는 단초를 마련하였다.
오늘날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수륙재는 사십구재[七七齋] 형식으로 전승되고 있다. 대체로 매년 양력 8월에 입재(入齋)로 시작하여 7일 간격으로 초재(初齋)부터 칠재(七齋)까지 총 49일 동안 진행된다. ‘삼화사수륙재’에서는 봉행 30일 전에 향행사(香行使)를 비롯하여 다양한 식전 의례를 행하고 있으며, 방생의식이 정식 절차로 들어가 있어 특징적이다. ‘진관사수륙재’는 양계(陽界)와 명계(冥界)의 존재를 위한 명양의례(明暘儀禮) 전통을 되살려 회향의식에 해당하는 칠재를 낮재·밤재로 나누어 이틀 동안 봉행한다. ‘아랫녘수륙재’는 다른 수륙재 의례에 비하여 민간성이 강조되며, 육재와 칠재 사이에 용왕재를 별도로 설행하고 있어 주목된다. ‘인천수륙재’는 회심곡 등에서 소리할 때 법음이 장중하고 독특한 곡절을 채택하고 있어 다른 지역과 구분된다. 이외에도 화성 용주사, 서산 보원사, 강진 무위사, 부여 백제문화제 등에서 수륙재를 봉행하며 의례 전통을 계승해가고 있다.
1. 수륙재 관련 문화재 지정 현황(2023년 6월 30일 기준)
1) 무형문화재
- 삼화사수륙재(三和寺水陸齋) : 국가무형문화재(2013.12.31. 지정) / 2021년 기록화
- 진관사수륙재(津寬寺水陸齋) : 국가무형문화재(2013.12.31. 지정) / 2016년 기록화
- 아랫녘수륙재(아랫녘水陸齋) : 국가무형문화재(2014.03.18. 지정) / 2015년 기록화
- 인천수륙재(仁川水陸齋) :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2004.04.06. 지정)
2) 유형문화재
- 서울 진관사 소장 괘불도 및 괘불함 : 국가등록문화재(2021.06.03. 지정)
- 마곡사 석가모니불 괘불탱(麻谷寺 釋迦牟尼佛 掛佛幀) : 보물(1997.08.08. 지정)
- 원주 구룡사 삼장보살도(原州 龜龍寺 三藏菩薩圖) : 보물(2015.03.04. 지정)
- 구례 천은사 삼장보살도(求禮 泉隱寺 三藏菩薩圖) : 보물(2016.02.22. 지정)
-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龜尾 大芚寺 三藏菩薩圖) : 보물(2019.06.26. 지정)
-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 삼장보살도(驪州 神勒寺 極樂寶殿 三藏菩薩圖) : 경기도 유형문화재(2013.11.12. 지정)
- 순천 선암사 서부도암 감로왕도(順天 仙巖寺 西浮屠庵 甘露王圖) : 보물(2008.03.12. 지정)
- 개운사 감로도(開運寺 甘露圖)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2006.07.06. 지정)
- 경국사 감로도(慶國寺 甘露圖)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2008.05.08. 지정)
- 용암사 감로왕도(龍巖寺 甘露王圖) :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2017.10.12. 지정)
- 서산 개심사 오방오제위도 및 사직사자도(瑞山 開心寺 五方五帝位圖 및 四直使者圖) : 보물(2012.04.25. 지정)
- 양산 통도사 오방제위도 (梁山 通度寺 五方帝位圖)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2014.03.20. 지정)
- 해련사 장엄의식구(海蓮寺 莊嚴儀式具) :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재(2015.08.26. 지정)
- 남해 화방사 바라(南海 花芳寺 波羅)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2010.03.11.)
-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등 13건
-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등 9건
-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 :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등 4건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인천/경기]강화 청련사 탱화 등 지방문화재-기념물 지정〉, 《동아일보》, 2004년 3월 19일.
- 주석 2 〈문화재청, 수륙재 무형문화재 지정 확정〉, 《법보신문》, 2013년 12월 20일.
관련기사
-
중국 수륙재의 역사중국 양나라(502-557) 무제(武帝) 소연(蕭衍, 464-549)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불교에 대한 신심이 두터웠던 무제는 유주무주(有住無住:떠도는 넋)의 고혼들을 널리 구제함이 제일가는 공덕이라 여겨, 스스로 『수륙의문(水陸儀文)』을 찬술하고 천감 4(505)년에 강소성(江蘇省) 금산사(金山寺)에서 재를 거행한 것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618-907)에서는 그 의식이 유명계(幽冥界)를 이익되게 한다고 하여 크게 융성하였다. 중국의 수륙재는 크게 남북(南北)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북수륙재는 『천지명양수륙의문...
-
고려 수륙재의 역사우리나라에서 수륙재가 설행된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첫째는 팔관회가 수륙재라는 설이다. 통일신라 진흥왕 33년(572) 10월에 외사(外寺)에서 전사한 사졸(士卒)들을 위해 7일간 설행된 팔관연회(八觀筵會)가 그것이다. 위령제가 수륙재의 성격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무차대회가 수륙재라는 설이다. 고려 태조 23년(940)에 공신당을 설치하여 무차대회를 열어 상례화한 것이다. 이들 설은 팔관연회와 무차대회의 성격과 수륙재와의 관계가 해명되어야 한다. 수륙재에 대한 직접적인 사료로는 고려 광종 19년(968)에 ...
-
조선 수륙재의 역사사료상으로 볼 때 수륙재는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보다는 오히려 조선시대에 더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건국 초에는 국가차원에서 왕조 교체기의 혼란한 민심을 안정시키고, 권좌를 위해 살상을 했던 그들의 죄를 씻기 위한 방편으로 수륙재에 관심을 기울였다. 태조 4년(1395) 2월에 개국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고려 왕씨를 비롯한 군신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관음굴(觀音窟), 현암사(見岩寺), 삼화사(三和寺)에서 수륙재를 베풀었다. 매년 2월 15일과 10월 14일, 연중 두 차례에 걸쳐 설행을 하는 것으로 제도화하였다. 이듬해에 ...
-
근대 수륙재의 역사고려부터 조선전기까지 국행의례로서 수륙재가 주로 설행되었으나,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불교 신행이 제한되면서 사찰 중심의 수륙재가 종문(宗門)이나 일가(一家)를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이전 시기의 의례 전통을 계승하여 망자(亡者)를 추천(追薦)하는 사십구재(四十九齋) 형식의 수륙재가 거행되었다. 더욱이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쟁이나 자연재해, 전염병, 기근 등 사회혼란 속에서 백성을 위무하고 치유하고자 공익적 목적에서 수륙재가 자주 설행되었다. 이를 방증하듯이 수륙재를 여법하게 준행하기 위하여 각종 법식(法式)과 재차(齋次)를... -
삼화사수륙재 설행 개요삼화사수륙재는 100일전 왕실에서 수륙재에 필요한 물목 중 중요한 향을 내리는 행향사(영향축의)를 시작으로 2박 3일간의 회향의식으로 진행되었다. 현재에는 수륙재 설행 49일 전에 77재 입재를 하여 7일마다 재를 지내고, 그 중 30일 전에 행향사 의식을 거행한다. 회향은 10월 셋째주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 2박 3일에 걸쳐 설행된다. 2022년에는 코로나19로 2019년부터 공개하지 않았던 의식을 3년만에 공개하여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거행하였다. 30일전 행향사 첫째 날(10.18) : 신중작법, 괘불불패이운, ... -
삼화사수륙재의 개요삼화사수륙재(국가무형문화재 제125호)의 전통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삼화사에 소장되어 전하고 있는 갑사본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와 덕주사본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가 삼화사수륙재의 전통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삼화사수륙재의 특징으로는 지화제작, 설단, 장엄, 고임새 등 준비 단계부터 수륙재 의례의 전반에 걸쳐 삼화사 신도들이 적극 참여하며 소통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지고 있는 점에 있다. 의례적 측면에서의 특징으로는 ①전통을 계승하여 매년 정기적으로 설행되고 있는 점, ②수인작법... -
근현대 진관사수륙재근대의 진관사 수륙재는 신문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독립신문》 1897년 9월 30일자 기사에서 어떤 스님은 아무 대신 집, 어떤 내인, 월욱이라는 스님은 서흥 군수 모씨가 진관사에서 조상의 천도재를 지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때 재를 준비하는 모습을 ‘스님들이 종이를 오려 각색의 가화(假花)를 만들고 그림도 그리며 부적도 쓰거늘.’〈잡보〉, 《독립신문》(서재필), 1897년 9월 30일자, 3면.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재를 앞두고 지화를 만들고 번과 같은 장엄물과 불화를 그리며 다라니를 쓰는 등의 모습에서 수륙...
-
진관사수륙재 설행 개요1. 입재부터 회향까지 진관사 수륙재는 양력 8월 무렵에 입재를 하고, 이후 칠일 간격으로 초재부터 육재까지 마친 뒤 마지막 49일째 되는 칠재 때 회향한다. 회향은 괘불을 모시고 낮재와 밤재로 나누어 이틀간에 걸쳐 설행된다. 회향은 매년 10월 둘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행해진다. 입재는 함월당과 명부전에서 ‘대령-관욕-위패이운-신중작법-상단소청-중단소청-상단권공-중단권공-하단시식-봉송회향’의 순서로 진행된다. 초재부터 육재까지는 명부전에서 ‘신중작법-법문-수륙연기-상단소청-중단소청-상단권공-중단권공-하단시식-봉송회향’의... -
진관사수륙재의 개요진관사에서 수륙재가 설행되었다는 기록은 1398년(태조 7)에 처음 등장한다. 1년 전인 1397년(태조 6)에는 권근(權近, 1352-1409)이 쓴 「진관사 수륙사 조성기(津寬寺水陸社造成記)」에는 진관사에서 수륙재를 지내기 위한 수륙사(水陸社) 건립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진관사에서 수륙재와 관련된 기록이 연산군대(1494-1506)까지 18건 등장한다. 1897년 ≪독립신문≫과 1916년 ≪매일신보≫에 수륙재 설행에 관한 기사가 나타난다. 1965년에 진관 스님이 사찰을 중창한 뒤 1968년에 대... -
아랫녘수륙재의 역사아랫녘수륙재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원곡 무학산 백운사를 도량으로 삼고 있다. 무학산 이외에 아랫녘수륙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영산이 있는데, 창원시 성산구 성주동과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에 위치한 해발 801m의 불모산이다. 불모산에 위치한 성주사와 장유암은 아랫녘수륙재의 연원을 찾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불모산은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首露王, 미상-199)의 부인인 허황옥(許黃玉, 미상-188)이 낳은 아들 7명이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다는 전설에서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 장유암은 허 황후와 함께 인도에서 ... -
아랫녘수륙재 설행 개요아랫녘수륙재의 의문은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를 모본으로 하고 있다. 아랫녘수륙재 어장 석봉철우에 따르면, “세 종류의 수륙재 의식문을 참고로 하여 아랫녘수륙재 의문을 완성하였다.”라고 한다. 담양 용화사(龍華寺) 묵담(黙潭) 소장의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를 본받아 여기에 통도사의 강백 벽봉 스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의식문과 아랫녘 스님들 사이에 전해진 수륙재 필사본 의식문을 참고로 하여 아랫녘수륙재의 의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현재 아랫녘수륙재의 의문 구성은 ① 결계의식, ② 사자의식, ③ 오로의식 ④ 상위 소청의식, ... -
아랫녘수륙재의 개요아랫녘수륙재는 삼화사수륙재와 진관사수륙재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국가무형문화재 127호)로 지정되었다. ‘국행’을 내세우는 삼화사나 진관사의 수륙재와는 달리, 백운사는 ‘아랫녘’을 내세운다. 이 아랫녘이라는 명칭에 아랫녘수륙재가 갖는 특징이 함축되어 있다. 아랫녘은 영남지역의 범음·범패승들 사이에 웃녘 소리와 구분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다. 아랫녘수륙재는 전승사적 맥락에서 보면 석봉 어장을 중심으로 한 불모산 성주사, 통영 용화사, 고성 관음사, 김해 장유암을 중심으로 전승된 통·고소리를 계승하고 있다. 아랫녘수륙재의 의문은... -
인천수륙재의 역사인천수륙재의 발원지는 현재 사적지로 지정된 강화도 마니산 아래 ‘묘통사(妙通寺)’로 본다. 묘통사는 고려시대 국가의 비보사찰 및 왕실의 원찰로서 여러 왕들이 행차하고 기도를 올렸던 곳이다. 특히 고려말 조선초 학자·문신인 권근(權近, 1352-1409)의 문집인 『양촌집(陽村集)』에 ‘묘통사수륙재소(妙通寺水陸齋䟽)’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사찰에서 수륙재가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인천수륙재는 고려시대 이후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최근 1980년도에 와서야 법운 스님과 서운 스님(화엄종)에 의해 작은 규모로 설행되어 명맥을... -
인천수륙재 설행 개요인천수륙재 설행은 『인천수륙재의문』을 소의로 봉행한다. 그 의례의 절차는 타종을 시작으로 수륙재의 별의식에 해당하는 시련→대령→관욕→신중작법→괘불이운을 연행한다. 이어 본의식에 해당하는 소청사자→소청상위→소청중위→소청하위→시식→봉송→회향을 연행 후에 마친다. 보통 설행은 오전 10시부터 시작하여 오후 4시까지 하루에 걸쳐 진행한다. 2022년도에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하여 괘불이운 의식을 생략하고 3시간으로 압축하여 봉행하였다. -
인천수륙재의 개요인천수륙재는 인천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수륙재로서, 2004년 4월 6일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었다. 보유자는 부평 자원사 주지 일초 스님이다. 인천수륙재 설행은 『인천수륙재의문』을 소의로 한다. 이 의례문은 인천수륙재보존회에서 제작한 것으로, 덕주사본(1573)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를 저본으로 한다. 이 책에서 소실되어 없는 부분은 『석문의범』을 참조하여 제작하였다. 인천수륙재는 수많은 전란을 겪은 고려와 조선왕조에서 민심 안정과 국가발전을 위해 국가적으로 행한 수륙재의 뜻을 이어 산자와 망자가 함께 ... -
용주사수륙재 설행 개요용주사 수륙재는 하루 동안 진행된다. 오전에는 수륙재를 준비하고 도량을 정화하는 의식으로서 시련을 시작으로 대령·관욕, 신중작법과 괘불이운, 운수상단, 사자단, 오로단까지 진행한다. 점심 공양 후 오후 의식이 시작되기 전에는 주지스님의 개회사, 내빈 축사, 초청법사의 법문을 듣는 법요식이 마련된다. 이후 본격적인 수륙의식으로서 상단, 중단, 하단의식까지 차례로 진행하고 봉송회향으로 마무리한다. 〈표1〉용주사 수륙대재 재차 시간절차내용오전시련의식수륙도량의 바깥에서 고혼을 모셔오는 의식대령의식관욕의식고혼에게 간단히 대접하여 기... -
용주사수륙재의 개요용주사는 2017년도부터 매년 10월 수륙대재를 개최하고 있다. 용주사 수륙재는 고려시대 최초의 수륙도량으로 알려진 갈양사(葛陽寺) 수륙재의 정신을 잇는 한편, 정조대왕의 명으로 개회된 1790년 용주사 무차대회(無遮大會)의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원력으로 설행되고 있다. 수륙대재는 하루 동안 진행된다. 점심 공양시간을 기준으로 오전, 오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오전에는 의례를 준비하고 공간을 정화하는 의식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오후에는 본격적으로 상위, 중위, 하위의 대상을 초정하고 공양하는 의례가 봉행된다. 의례의 마지막에... -
보원사수륙재의 역사보원사는 창건이래로 16세기 중반 수륙의문이 판각되기까지 수륙재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16세기 중후반 보원사에서 14종의 목판이 제작되었다. 그 중에 수륙재와 관련된 판본은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1565),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1566),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1566), 『천지명양수륙잡문』(1581) 4종이 있다. 또한 『묘법연화경』(1565)이 함께 간행되었는데 이는 수륙재 의식의 주요 독송 경전으로써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륙재 설행 관련 기사가 보이지 않아 그것이 어떤 형식이었는지를... -
보원사수륙재의 개요보원사에서 16~17세기 판각돼 개심사에 보관해온 불서 목판 200장이 2019년 5월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특히 그중 187장이 국가의례로 시행된 수륙재 의례문을 담고 있어 조선 중후기까지 보원사가 수륙재 중심도량임을 증명한다. 보원사는 이러한 경판을 바탕으로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보원사수륙재설행위원회를 출범하고 2020년 10월부터 매년 내포 가야산 보원사수륙재 재현회를 봉행해 오고 있다. 보원사수륙재는 49재 형식의 입재를 시작으로 초재에서 육재까지 지내며, 5재 때에는 간월암(看月庵)에서 방생기도를 포함한 서해안 조... -
무위사수륙재의 역사무위사 수륙재가 언제부터 시행되었는지 명확한 자료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수륙사(水陸社)로 삼았다는 기록과 1571년에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1572년 『천지명양수륙잡문』 등 각종 의례집을 간행한 사실로 보아 조선초기에 이미 설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무위사 수륙재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1656)를 통해서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37권 전라도 강진현 불우조에 “... -
근현대 봉은사예수재1911년 조선총독부는 사찰령 및 사찰령시행규칙을 발표․제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는 조선 불교계를 통제하기 위해 사찰의 재산권, 주지 임면권 등을 장악하였으며, 그 시행의 편의를 위해 30개의 본사와 그에 속한 말사의 형태로 전국 사찰을 구분하였다. 봉은사는 이 제도가 시행된 1911년부터 서울과 경기도 일원의 80여 사암을 관장하는 본사로 지정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봉은사는 선종수사찰(禪宗首寺刹)이었던 조선시대의 위상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수도권의 80여 사암을 대표하는 본사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 ...
-
수륙재와 예수재의 이해사성육범의 영가에게 베푸는 법식, 수륙재 수륙재는 인도의 시아귀회(施餓鬼會)에서 유래된 불교의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륙재는 중국을 거쳐 고려 때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데, 고려시대에는 민심을 달래고 구휼하며 망자를 천도하고 재액을 풀기 위해 설행되었다. 조선시대 수륙재는 고려왕실의 원혼들을 위해 시작되었으나 조상을 위한 천도재의 일환으로 간주되어 유교의 상례와 결합되어졌고, 『육전(六典)』에 법제화된 유일한 불교의례로 자리잡았다. 수륙재의 명칭은 재를 베푸는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불린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 법회... -
현대의 수륙재와 예수재현대의 수륙재와 예수재는 2000년대 이후 학술적 조명과 함께 불교의례의 원형을 복원하고 불교의례로서의 문화유산적 가치로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수륙재와 예수재에 대한 무형문화재 지정 현황은 모두 7건이다. 그 가운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수륙재에는 강원도 삼화사 수륙재, 서울 진관사 수륙재, 밀양 백운사의 아랫녘 수륙재가 있고, 시도무형문화재에 인천 약사사의 인천수륙재가 있다. 예수재에는 시도무형문화재로 경남 광제사의 밀양 작약산 예수재, 서울 봉은사의 생전예수재, 경기도 청련사의 생전예수재가 있다. 다만 ... -
윤달 행사 생전예수재 및 수륙대재3년마다 돌아오는 윤달에 맞추어 7교구 본사 및 말사 그리고 대중들과 같이 간월암에서 생전예수재 및 수륙대재를 봉행한다. 이때 간월암 주차장에 단을 조성하여 49일동안 재를 준비하여 회향한다.
더보기 +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