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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륙재의 역사

중국 양나라(502-557) 무제(武帝) 소연(蕭衍, 464-549)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불교에 대한 신심이 두터웠던 무제는 유주무주(有住無住:떠도는 넋)의 고혼들을 널리 구제함이 제일가는 공덕이라 여겨, 스스로 『수륙의문(水陸儀文)』을 찬술하고 천감 4(505)년에 강소성(江蘇省) 금산사(金山寺)에서 재를 거행한 것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1]志磐 撰, 『불조통기』 권33. 水陸齋 조. “水陸齋 梁武帝 夢神僧告之曰 六道四生受苦無量 何不作水陸大齋以拔濟之 帝以問諸沙門無知之者 唯誌公勸帝 廣尋經論必有因緣 帝即遣迎大藏 積日披覽 創立儀文 三年而後成 乃建道場.” 당나라(618-907)에서는 그 의식이 유명계(幽冥界)를 이익되게 한다고 하여 크게 융성하였다. 중국의 수륙재는 크게 남북(南北)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북수륙재는 『천지명양수륙의문』을 기반으로 동천양악(東川楊諤)과 자각종색(自覺宗賾, ?-?) 등이 활동한 화이하(淮河)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하였다. 양악은 희령(熙寧) 4년(1071)에 『수륙문(水陸文)』 3권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수륙의(水陸儀)』 2권(유실)과 『중광수륙무차대재의(重廣水陸無遮大齋儀)』, 『수륙대재유가밀교(水陸大齋瑜伽密教)』 등이 있다. 남수륙재는 남송(南宋, 1127-1279) 함순 6년(1270)에 지반(志磐, ?-?)이 찬술하고 명나라 말기 운서주굉(雲棲袾宏, 1535-1615)에 의하여 다시 증보된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를 기반으로 항저우(杭州) 지역을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는 수륙재의 기원과 의식 및 절차 등에 관한 내용을 모아 6권으로 정리하여 편찬하였다. 이것으로 수륙의문과 수륙서(水陸書)가 비교적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중국 금(金, 1115-1234)의 자기(仔夔, ?-?)에 의하여 『천지명양수륙의문(天地冥陽水陸儀文)』, 『자기문절차조열(仔夔文節次條例)』 등 수륙의례문이 찬집되었다 이들 의례집의 영향으로 고려 죽암(竹菴)이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를 편찬하였다. 우리나라의 『영조실록』에 따르면, 영조 29년(1753) 청나라를 다녀온 삼사신(三使臣)이 토목역사와 황태후의 수연(壽宴)이 있은 뒤 13성에서 모두 수륙재를 설행했다고 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중국에서도 수륙재는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집필자 : 불교민속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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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석 1 志磐 撰, 『불조통기』 권33. 水陸齋 조. “水陸齋 梁武帝 夢神僧告之曰 六道四生受苦無量 何不作水陸大齋以拔濟之 帝以問諸沙門無知之者 唯誌公勸帝 廣尋經論必有因緣 帝即遣迎大藏 積日披覽 創立儀文 三年而後成 乃建道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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