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산 오비구’는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로서, 아미타불을 염송하던 다섯 비구가 동시에 함께 정토에 왕생했다는 이야기이다.
「포천산 오비구 경덕왕대(布川山 五比丘 景德王代)」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제5 피은(避隱) 제8편에 ‘영여사(迎如師)’와 함께 수록된 설화로서, 아미타불을 염송하던 다섯 비구가 동시에 함께 정토에 왕생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염불하던 다섯 비구는 서쪽에서 성중(聖衆)이 직접 맞이하러 왔지만, 정토에 가기 전에 다 같이 연화대에 앉아 허공에서 통도사 대중 스님들에게 설법하였다. 이후 육신(肉身)을 버리고 대광명(大光明)을 발(發)하여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는 곧바로 떠났다. 다음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포천산 오비구에 관한 이야기이다.
포천산 오비구_삼국유사(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신라 경덕왕(景德王) 대(代)에 삽랑주(歃良州)[1]삽량주(歃良州)는 경상남도 양산군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 지리지 양주조에 문무왕 5년 삽량주를 두었고 경덕왕 때 양주로 고쳤다고 나와 있다. 충렬왕 이후 양산이라고 하였고 조선 태종 14년(1414)에 양산군으로 고쳐졌다(『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북도지리지).의 동북쪽 20여 리(理)에 포천산(布川山)[2]포천산(布川山)은 경상남도 양산군 웅상면에 있는 원효산(元曉山)의 신라 때 이름으로 생각된다(강인구 외(2003), 『역주 삼국유사』 4, 이회문화사, 362쪽). 석굴(石窟)[3]경상남도 양주군 웅상면에 있는 원효산에 있는 신라 때의 석굴 사원으로 미타암으로 불린다. 자연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자연굴에 인공을 가하여 만들었으며 석굴 내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아미타불입상이 있다(문명대(1969), 「포천산 석굴고」, 『동국사학』 11, 동국사학회).이 있는데 기이하고 빼어나 사람이 깎은 듯하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섯 비구(比丘)가 어느 날 이곳에 와서 머무르며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염(念)하였다. 다섯 비구가 서방정토를 구한 지 10년 만에 홀연히 극락세계에서 보살들이 와서 그들을 맞이하였다. 이 다섯 비구가 함께 연화대(蓮花臺)에 앉아 공중으로 날아올라 통도사(通度寺)의 문밖에 이르러 머물자, 하늘에서 음악 소리가 연주되었다. 절에 있던 스님들이 나와서 살펴보았다. 다섯 비구는 그들을 위해 무상(無常)·고(苦)·공(空)의 이치를 설(說)하고, 육신의 허물을 벗고 남은 유해(遺骸)에서 대광명(大光明)을 내뿜더니 서쪽으로 가버렸다. 그 육신의 허물을 버린 곳에 사찰의 스님들이 ‘치루(置樓)’라고 이름 붙인 정자[亭榭]를 세웠다. 치루는 고려 시대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주석
- 주석 1 삽량주(歃良州)는 경상남도 양산군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 지리지 양주조에 문무왕 5년 삽량주를 두었고 경덕왕 때 양주로 고쳤다고 나와 있다. 충렬왕 이후 양산이라고 하였고 조선 태종 14년(1414)에 양산군으로 고쳐졌다(『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북도지리지).
- 주석 2 포천산(布川山)은 경상남도 양산군 웅상면에 있는 원효산(元曉山)의 신라 때 이름으로 생각된다(강인구 외(2003), 『역주 삼국유사』 4, 이회문화사, 362쪽).
- 주석 3 경상남도 양주군 웅상면에 있는 원효산에 있는 신라 때의 석굴 사원으로 미타암으로 불린다. 자연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자연굴에 인공을 가하여 만들었으며 석굴 내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아미타불입상이 있다(문명대(1969), 「포천산 석굴고」, 『동국사학』 11, 동국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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