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이도는 용수가 『십주비바사론』에서 설한 난행과 이행의 이도설을 말한다.
난이이도(難易二道)(혜운)
난이이도(難易二道)는 용수(龍樹, Nāgārjuna, 약 150-250)가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설한 난행(難行)과 이행(易行)의 이도설(二道說)을 말한다. 『십주비바사론』은 『화엄경(華嚴經)』의 「십지품(十地品)」을 주석한 것이고, 난이이도는 말 그대로 깨달음에 도달하는 길을 두 가지로 밝힌 것이다. 이러한 용수의 난행과 이행의 구분은 중국 정토교의 담란(曇鸞)과 도작(道綽), 일본의 법연(法然)과 신란(親鸞) 등이 난행도(難行道), 이행도(易行道)라 부르고, 불교를 자력문(自力門)과 타력문(他力門),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 두 가지로 분류하는 근거로 삼았다.
용수는 『십주비바사론』 「이행품(易行品)」에서 “만약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쉽게 가는 길로써 아유월치(阿惟越致)의 지위를 빨리 이룰 수 있는 방편이 있다면 가르쳐 주십시오.”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세간의 길에 어려움이 있고 쉬움이 있어서 육지의 길로 걸어가면 고생되고 물의 길로 배를 타고 가면 즐거운 것처럼, 보살의 길도 그러하여 혹은 부지런히 행하며 힘써 나아가는 것이 있기도 하고 혹은 믿음의 방편으로써 쉽게 가서 아유월치에 빨리 이르는 자도 있다.”
이처럼 난행은 자기 힘[自力]으로 오랜 시간 고행(苦行)을 닦아 불퇴전(不退轉)의 지위에 이르는 것이고, 이행은 남의 힘[他力]에 의지해 쉽고도 편안하게 불퇴전의 지위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용수는 이 두 가지 길을 정토에 왕생하는 방법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이는 대승의 보살도(菩薩道)를 닦는 보살이 오랜 시간 수행하다가 성문지(聲聞地)나 벽지불지(辟支佛地) 같은 하열한 지위에 빠지면 보살의 자격을 잃어버릴 수 있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빠르고 쉽게 불퇴전의 지위에 들게 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용수는 다시 말하였다.
“만약 사람이 원(願)을 세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고자 하면, 아직 아유월치를 얻지 못한 그 중간에서는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밤낮으로 힘써 나아가되 마치 불타는 머리를 구하듯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용수가 말한 난행·이행은 대승보살도, 즉 보살이 52계위를 밟아서 깨달음에 들어가기 위해 불퇴전의 지위를 성취하는 데 대하여 설한 것이다. 이것을 담란은 정토에 왕생하는 데 있어서 자력수행(自力修行)으로는 가기 어렵고,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하여 가는 타력수행(他力修行)은 쉽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담란 대사(현대불교-김성우 기자, 현대불교)
담란(曇鸞, 476-542)은 용수의 난이이도의 수행 관념을 채택하여 난행도와 이행도의 정토교 교판론을 세웠다. 담란은 『왕생론주(往生論註)』에서 난행도는 오탁의 악한 세상과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시기에 자력만으로 아비발치의 지위를 구하려는 것이고, 이행도는 단지 부처님을 믿는 인연으로 정토에 왕생하길 원하면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힘입는 타력으로 극락정토에 가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담란의 교판론은 후대의 도작과 선도(善導)가 계승하였다.
도작(道綽, 562-645)은 말법(末法)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성정이문(聖淨二門)의 정토교를 설하였다. 성정이문이란 성도문과 정토문을 말한다. 성도문은 자기 힘으로 스스로 노력하여 현세에서 깨달음을 여는 수행문을 말하고, 정토문은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고 이 본원력에 의지하여 현세에서 아미타불의 가피력을 입어 극락정토에 태어나서 깨달음을 여는 수행문을 말한다. 그래서 성도문을 자력교(自力敎) 또는 자력문이라 하고, 정토교를 타력교(他力敎) 또는 타력문이라 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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