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명 연수(永明延壽, 904~975)는 법안문익(法眼文益, 885~958)-천태 덕소(天台德韶, 890~972)의 문하의 법안종 선사이며, 참선과 염불 수행에 전념하였다.
영명연수(정운, 현대불교)
영명 연수(永明延壽, 904~975)는 904년 절강성(浙江省) 임안부(臨安府) 여항(餘杭) 출신이다. 일찍이 불법에 뜻을 두어 오신채를 먹지 않았으며, 20세부터는 하루 한 끼 식사를 하며 『법화경』을 독송했다. 28세에 ‘화정진장(華亭鎭將)’이라는 관리로 지내던 때에, 군용으로 사들인 생선과 새우 등을 모두 방생하였다. 영명연수는 이 일로 체포되었으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함으로서 누명을 벗고 석방되었다.
그 후 30세에 용책사 취암(翠巖)선사의 문하로 출가하였으며, 이후 천태 덕소(天台德韶, 890~972)를 만나 법을 전수 받고 법안종의 3조 선사로 절강성 국청사에 머물렀다. 영명연수는 법화참법을 오래 닦았으며, ‘일생동안 선정에 들고 간경하며, 수많은 정진력으로 정토를 장엄한다(一生禪定誦經 萬善莊嚴淨土)’는 뜻을 새기며 참선과 염불수행을 하였다. 명주(明州) 설두산(雪竇山)에 머물 때는 매일 아미타불을 염하고, 행도발원(行道發願) 등 108종의 불사를 행하는 등 일생을 참선하며 염불할 것을 서원하였다. 영명연수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종경록(宗鏡錄)』, 『만성동귀집(萬善同歸集)』 등이 전해진다.
『만성동귀집(萬善同歸集)』에서는 “지금 이야기하려 하는 온갖 선법(善法)은 모두가 실상(實相)을 그 바탕으로 하여 돌아가는 것이다. … 오직 이 같은 이치에만 계합(契合)하면 나머지 만덕(萬德)은 저절로 갖추어진다”며 모든 수행의 근본은 반야관조(般若觀照), 즉 실상관(實相觀)에 입각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또 다른 구절에서는 “문수반야경에서는 수행하는 이가 스스로 우둔해서 능히 관찰하지 못 한하면 다만 생각과 소리만 계속 이어지게 하라. 그래도 반드시 불국토에 왕생할 수 있으리라”라고 설하고 있다. 이는 수행하는 이가 근기가 낮아 실상염불을 하기 어려우면, 관상(觀像, 觀想)염불과 칭명(稱名)염불만으로도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명연수는 정토에 관한 질문에는 “유심정토(唯心淨土)는 마음을 깨달아야 비로소 날 수 있는 곳이니,『여래부사의경계경(如來不思議境界經)』에 이르기를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따로 있는 바가 없고 오직 자심(自心)에 의지한다. 보살은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과 모든 법이 오직 마음의 현상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으며, 염불수행으로 정토에 왕생함은 깨달음의 경지와 동일한 것이라 하였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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