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 혜원은 중국 정토종의 개조로서 염불결사를 최초로 주창하였다.
여산 혜원(김성우, 현대불교신문)
[혜원의 생애]
여산 혜원(慧遠, 334-416)은 동진시대의 승려로서 중국 정토종의 개조로 알려져 있다. 혜원은 염불삼매를 주창하고 결사운동의 효시인 여산의 백련결사를 이끌었다. 혜원의 전기는 『양고승전(梁高僧傳)』, 『불조통기(佛祖統紀)』, 『용서증광정토문(龍舒增廣淨土文)』, 『낙방문류(樂邦文類)』, 『여산연종보감(廬山蓮宗寶鑑)』 등에 전해진다. 혜원은 산서성(山西省) 안문루번(雁門樓煩) 출신으로 21세 때 동생 혜지(慧持)와 함께 도안(道安, 312-385)의 문하로 들어갔다. 먼저 도안으로부터 반야경 강설을 듣고 반야공관(般若空觀)에 대해 공부했다. 이후 혜원은 전란으로 인해 도안과 헤어져 형주를 거쳐 강서성의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에 머물렀는데, 세상을 떠날 때까지 33년 간 여산의 산문 밖으로 나가지 않아 여산을 대표하는 여산 혜원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혜원은 교학에 매우 밝아 학자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염불을 통해 수많은 승속을 교화하여 여산 동림사를 당대 최고의 불교권으로 만들었다. 당시 권력자 환현(桓玄)은 혜원과 동림사를 왕권 하에 예속하려했지만 혜원은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을 저술하여 “사문은 지배자인 왕에게 예경을 올릴 필요가 없다”고 하는 세속 권력에 굴하지 않는 출가자의 입장을 천명함으로써 국가권력으로부터 종교의 자유를 주창하였다. 또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알려진 도연명(陶淵明)이나 유유민(劉遺民) 등이 제자로 귀의할 정도로 이름을 떨쳤다.
[혜원의 수행]
혜원의 수행은 지루가참(支婁迦讖)과 축불삭(竺佛朔)이 179년 번역한『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에 기초하고 있다. 이 경전에서는 아미타불에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붓다를 바로 앞에서 친견할 수 있다고 하는, 이른바 견불(見佛)을 설한다. 혜원은 동림사에 머물면서 선법을 일으킴과 동시에 사찰에 아미타불을 모셔 놓고 서방왕생을 기원하였다. 후대의 정토사상이 정토삼부경에 기초하지만 혜원의 사상은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을 기본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먼저 붓다의 상호(相好)를 관찰하고 반주삼매(般舟三昧)에 들어 아미타불을 관견(觀見)하여 정토에 왕생할 것을 발원한다. 이 때 입으로 붓다의 명호를 부르는 대신, 마음을 아미타불과 같은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잡념이 없는 적정한 상태의 마음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혜원이 활동하던 시기는 『관무량수경』이 한역되기 전으로 혜원의 수행법은 후대의 도작 및 선도 등이 주창한 칭명염불 중심의 실천수행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혜원과 염불결사]
혜원은 다른 수행보다 염불을 우선으로 삼는다는 의미에서 ‘염불위선(念佛爲先)’을 주장하였다. 염불을 중요시하는 그의 발원은 중국 최초로 염불결사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402년 혜원이 유유민(劉遺民) 등 18현(賢)를 포함하여 123명의 대중들이 아미타불상 앞에서 서약을 하고 정토왕생을 서원하며 염불한 것이 백련결사(白蓮結社)로 불리게 되었다.
백련결사는 중국의 후대 염불결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송(宋)의 담홍(曇弘), 재(齊)의 법림(法琳) 등은 『무량수경』과 『관무량수경』을 독송하여 극락왕생을 발원하였고 같은 시기 혜통(慧通)·혜광(慧光)·도빙(道憑) 등도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모임을 가졌다. 염불결사 및 모임 등이 바탕이 되어 중국의 정토사상은 선도(善導)·담란(曇鴛)·도작(道綽) 등으로 이어져 크게 융성하게 되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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