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기관 명칭 | 염불사지, 염불사지 삼층석탑, 염불사 |
|---|---|
| 수행기관 주소 | 경북 경주시 남산동 1129-3 |
염불사지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 권 제5, 제8 피은(避隱)의 염불사(念佛師) 조(條)에 나온다.
전(傳) 염불사지(念佛寺地)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경주시 남산동에 소재한 남리사지(南里寺地)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2003년과 2008년 2차에 걸쳐 조사한 ‘경주 남산 남리사지 동·서 삼층석탑’ 발굴 결과에 의하면, 이곳에서 통일신라 시대의 2탑(塔) 1금당(金堂)의 가람(伽藍) 배치가 확인되었다. 이 사지(寺地)에 있는 동·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기인 8세기 전반에 5.85m 높이로 건립된 것이다. 두 탑은 모두 상, 하 2층의 기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탑신(塔身, 몸돌)과 옥개석(屋蓋石, 지붕돌)은 각각 1매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현재, 상륜부는 대부분 사라졌고 노반석(露盤石, 탑의 상륜부를 받치는 돌)만 남아 있다.
동탑(東塔)은 1963년에 불국사역 광장으로 이전되었던 것을 2009년 사지(寺地) 정비와 함께 원래 위치로 이전 복원되었다. 무너져 있던 서탑(西塔)도 동탑과 함께 원위치에 복원되었다.
경주 (전)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 전경(오른쪽 동탑)(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염불사지(現 남리사지)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제5, 제8 피은(避隱)의 염불사(念佛師) 조(條)에 나온다. “경주 남산(南山)의 동쪽 기슭에 피리촌(避里村)이 있는데, 그 마을에는 마을 이름을 딴 피리사(避里寺)가 있었다. 절에는 자기 이름도 말해주지 않는 특이한 스님이 있었는데 항상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염송하였다. 스님의 염불 소리는 성(城)의 안쪽뿐만 아니라, 360방(坊) 17만(萬) 호(戶)까지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염불 소리는 높고 낮음 없이 한결같이 낭랑하여 듣는 사람마다 신이(神異)하게 여기고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염불 스님[念佛師]’이라고 불렀다. 염불 스님이 입적(入寂)하자, 사람들은 진흙으로 스님의 진영(眞影)을 만들어서 민장사(敏藏寺)에 안치하였다. 이후 스님이 염불하며 머물던 본래 피리사는 염불사(念佛寺)라고 사명(寺名)을 고쳤다. 이 절 옆에도 다른 절이 있어 마을 이름에 따라 양피사(讓避寺)라고 불렀다.”
경주 (전)염불사지 동·서 삼층석탑 전경(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더보기 +
-
佛敎講話
-
徐京保人生論全集. 1-10
-
알기쉬운 불교사 이야기. 제1권
-
불교명저. 7, 윤회전쟁
-
삼국유사
-
해설 삼국유사
-
(역해)삼국유사
-
三國遺事의 綜合的 解釋
-
(譯註) 三國遺事
-
삼국유사. 1-2
-
삼국유사
-
삼국유사
-
韓國佛敎史話
-
(깁더)삼국유사
-
삼국유사 피은편의 저술과 일연
-
三國遺事로 본 新羅淨土信仰 硏究
-
신라 왕경 사찰의 분포와 추이
-
元曉의 淨土信仰과 思想에 관한 硏究 : 無量壽經宗要를 中心으로
-
三國遺事 ‘念佛師’條의 吟味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