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기관 명칭 | 한미산[노고산] 흥국사 약사전, 한미산[노고산] 흥국사 대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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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기관 전화 | 02-381-7970 |
| 수행기관 주소 | 경기 고양시 덕양구 흥국사길 82 |
한미산 흥국사 만일염불회는 국태민안과 불교중흥을 위해 뜻깊은 수행자들이 완해(玩海) 스님을 회주로 모시고 1904년 10월에 창설하였다.
한미산 흥국사 풍경(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한미산[노고산] 흥국사의 만일염불회는 대한제국의 국운이 쇠퇴하고 승려들의 기풍이 쇠락하던 시절에, 국태민안(國泰民安)과 불교중흥(佛敎中興)을 위해 뜻깊은 수행자들이 완해(玩海) 화상을 회주(會主)로 모시고 1904년 10월에 시작하였다. 1915년에는 이 결사를 이끌었던 해송, 뇌응, 풍곡, 호봉 등의 대중 스님들의 원력으로 새로운 건물을 짓고 도량을 정돈하여 대가람(大伽藍)으로 일신하였다. 이 염불회의 만일 회향을 앞둔 1929년에 당대 고승인 석전 영호당 정호(박한영, 1870-1948) 대종사께서 글을 짓고, 성당 김돈희 선생이 글씨를 써서 ‘한미산흥국사만일회비기(漢美山興國寺万日會碑記)’를 세웠다. 다음은 이 기념비(記念碑) 내용이다.
한미산흥국사만일회비(경기관광공사, 경기관광 – 여행이야기 - 흥국사편)
금년(今年) 8월 흥국사 주지 해송(海松) 스님께서 돈을 내어 비석을 마련하고 상좌 윤진(允進) 스님을 개운사(開運寺)에 머무는 내게로 보내어 만일회비기(万日會碑記)를 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절의 기록을 살펴보니, 근년의 큰 업적이 만일회에 그치는 것뿐만 아니라, 도량을 장엄하고 불상(佛象)과 탱화(幀畵)를 조성하여 사람들을 감동케 한 일이 자못 많다. 그러나 노스님께서는 진실한 가풍만을 준수할 뿐이요, 일을 과장하여 기록하지 아니하였다. 그저 도량에 모여 부처님 명호를 외우고 탑묘(塔廟)를 장엄하고 경전을 공부하고, 재계(齋戒)하여 계율 지키기를 수십 년을 하루처럼 하였으니, 여타의 허무를 뇌까리고 실컷 노닥거리며 부처님을 속이는 무리와 한가지로 말할 수는 없다.
한미산 흥국사 약사전 처마(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이 절은 신라 문무완 원년(661) 해동의 화엄초조 원효대사가 양주 천성산에서 북한산으로 와서 머물며 몇 곳의 절을 지었으니, 북한산성 서쪽의 원효대(元曉臺)가 그 첫째요, 노고산의 흥서암(興瑞庵=흥국사)이 그다음이며, 석조약사불상도 같은 시기에 조각한 것으로서 일천백여 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엄연히 모셔져 있다고 한다.
암(庵)자를 사(寺)자로 바꾸어 흥국(興國)의 호(號)를 내린 것은 조선 영조 때의 일이다. 산의 이름을 한미(漢美)로 바꾼 것은 할미[할머니]의 소리를 옮긴 것일 뿐이다. 영조가 잠저(潛邸)에 계실 째 북한산에 와서 향을 사른 적이 있는데, 왕위에 오른 뒤 세모(歲暮) 때 소령원(昭寧園)에 거동하던 길에 이 절에 들렀다가 대설(大雪)을 만났다. 영조는 버들가지로 “아침나절에 기분이 상쾌하더니, 한 자 눈이 내려 풍년을 예고하네”라는 시를 전각에 새겨두고, 다시 약사전(藥師殿) 세 글자를 써서 내리시니, 사중이 모두 기뻐하였다.
……
광무 갑진년(1904) 10월에 회주(會主) 완해 스님이 선도하여 상궁 김정덕행(金淨德行)과 장정심화(張淨心華), 정대덕행(鄭大德行)과 함께 발원하여 만일회(万日會)를 창설하였다. 만일회란 백련사(白蓮社)의 이칭으로서 30년 동안 염불하며 부처님을 모실 것을 기약하는 모임이다. 그때 대중이 혜월(慧月) 스님을 선발하여 연사(蓮社)의 화주로 삼았다. 이듬해 을사년(1905) 봄에는 진관사의 해송 스님을 맞이하여 연사의 화주로 삼았다.
고양 흥국사 대방(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융희 무신년 가을에 상궁 오씨(吳氏)와 청신사 원학주(元鶴柱)가 중흥사의 금고(金鼓)를 사서 사중(寺中)에 헌납하였다. 1911년 건봉사의 회명(晦明) 스님이 연사의 성취를 위하여 양양의 논 80두락을 헌납하였으며, 같은 해 가을에 서울의 청신녀 박신심월(朴信心月)이 좋지 않은 논을 헌납함에 절 땅을 함께 매각하여 통천의 땅을 마련하니, 1년에 도조(賭租)가 4백여 말이 되었다. 1912년 혜월 스님이 입적해서 이듬해부터는 대중의 요청에 따라 해송 스님이 화주의 일을 겸임하였다. 그해 청신녀 정원만행(鄭圓滿行)이 3백 금을 내어 상해빈가정사판(上海頻伽精舍版) 대장경을 구하여 사중에 보관하였다. 1913년 겨울, 주지(住持)인 해송 스님과 뇌응, 풍곡, 호봉 스님 등이 협력하여 국유림 26정(町) 9반(反) 8무(畝)를 임대받았다. 1915년 여름에 대중이 건물 2동 32간을 짓고, 2년 후에 또 향각과 동별당 2동 14간을 지으니, 대가람이 이루어졌다. 이듬해 여름에서 겨울까지 화엄법회를 거듭 개설하였다고 한다.
고양 흥국사 대방 전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아아! 오늘날 사문의 풍조는 예전과 아주 달라서 부처님을 팔아먹고 상주물(常住物)을 함부로 쓰는 것을 예사롭게 여기며 바깥에 권속과 사가를 두어 저자를 이루니, 사문으로서의 행실을 거의 잃어버릴 지경이다. 그러나 해송 스님과 그 청정 대중들은 연사를 맺은 이래 26년 동안 한눈을 팔지 않고 함께 기십만 번 염불 정진하여 깊이 불법의 바다에 들어갔으니, 과연 경전에 이른 바대로 연잎 위에 성태(聖胎)가 이미 향기롭구나. 또한 사묘(寺廟)를 장엄하고 화엄법계(華嚴法界)를 연설하니, 이와 같은 가람은 옛날 불교가 융성했던 때를 비추어 보더라도 조금도 손색이 없거늘 하물며 말법 시대에 있어서랴!
너희들! 태산·화산과 노고산의 영령들은 때맞추어 와서 길이 산문을 보존할지어다.
불기 2956년 기사(己巳, 서기 1929년) 중춘일(仲春日, 양력 3월 일)
구산(龜山) 사문(沙門) 정호(鼎鎬, 박한영(朴漢永)) 찬(撰),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 서(書)
흥국사 만일염불회는 국태민안과 남북평화통일을 발원하며 지난 2014년 3월 8일에 제1차 천일기도를 다시 시작하였다. 2022년 5월 24일에 입재 한 제4차 천일기도는 2025년 2월에 회향할 것이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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