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기관 명칭 | 수락산 흥국사 대웅보전, 수락산 흥국사 대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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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기관 주소 | 경기 남양주시 덕릉로1071번길 58 |
흥국사 염불만일회는 조선시대 말, 당시 주지였던 범화 스님이 개인 정재(淨財)를 희사하면서 시작되었다.
남양주 흥국사 전경(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남양주문화대전)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水落山 興國寺)의 창건 시기는 559(진평왕 21)년에 신라시대 화랑(花郞)이 지켜야 했던 다섯 가지 계율인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내려준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창건한 수락사(水落寺)가 그 효시라고 한다. 이후 1568(선조 1)년 선조(宣祖)가 이 절에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을 위한 원당(願堂)을 짓고 흥덕사(興德寺)라는 편액(扁額)을 내려 사명(寺名)을 바꾸었는데, 민간에서는 이 원당을 중시하여 덕절[德寺]이라고 불렀다. 1626년 인조(仁祖)가 다시 흥국사로 부르게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라를 흥하게 한다[興國]’라는 사찰의 이름에 걸맞게 유교(儒敎)가 통치 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에도 왕실의 안녕(安寧)을 발원(發願)하는 사찰로서 그 위상이 높았다.
남양주 흥국사 대방_현판(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흥국사에는 2011년 등록문화재 제471호로 지정된 만세루라는 대방이 있다. 「興國寺事蹟(흥국사사적)」, ‘興國寺萬歲樓房重建記功文(흥국사만세루방중건기공문)’ 등의 사료에 의하면, 이 대방은 대웅전을 실제적이며 상징적 의미의 불단으로 삼아 염불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구성된 독특한 형식의 복합 법당으로서 루(樓)·승방(僧坊)·부엌 등의 부속 공간을 함께 갖추고 있다.
남양주 흥국사 대방(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흥국사 대방은 정토사상이 크게 성행하던 근대불교 시기에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며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수행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곳이 본격적인 염불당으로 역할 하게 된 것은 1940년 흥국사에 ‘만일회’가 결성된 때로 추정하고 있다.
남양주 흥국사 대방 내부_01(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20세기에 들어 서울·경기지역에는 만일회가 성행하였다. 이러한 시절에 당시 주지였던 박범화 스님이 개인의 정재(淨財)를 희사(喜捨)하면서 흥국사에서도 만일염불회가 결성되었다. 이에 따라 수락산 흥국사에서도 정토사상과 염불 수행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으며, 이 도량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던 만세루 대방이 염불당으로 활용되었다.
남양주 흥국사 대방 내부_02(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이 밖에도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에는 1853년 남호당 영기(1820-1872) 대사가 화주가 되어 제작한 목판본 『연종보감(蓮宗寶鑑)』이 있다. 이는 원나라 때 염불 결사의 정토종 일파인 백련종의 승려 보도가 편찬한 정토 신앙서이다. 표지의 서명은 연종보감이고, 목차의 서명은 염불보감(念佛寶鑑)으로 되어있다. 흥국사의 『연종보감』을 통해 조선시대 말기에 유행한 염불 수행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남양주 흥국사 대방_처마(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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