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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만일회

대흥사의 말사인 미황사에서는 19세기 중반 만일회가 결성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하루 일과로서 고성염불을 통한 사분정근(四分精勤)을 주된 염불수행로 하였다.
미황사 대웅전 전경(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미황사는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로서 신라대 경덕왕 8년(749년)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미황사는 일찍부터 염불결사가 널리 행해졌다. 미황사에 본격적으로 만일염불결사가 행해진 것은 1858년 영허 의현(靈虛義玄, 1816-1874)에 의해서이다. 영허는 달마산에서 출가하여 선암사, 송광사 등에서 수행하다가, 달마산 미황사에서 만일염불회를 주창하였다. 이후 미황사에서 하루에 4번씩 정근하는 사분정근(四分精勤)을 통해 고성염불을 시작하면서 많은 대중들이 동참하였다. 당시 영허는 물론 대중들 역시 결사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글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영허가 주도한 미황사의 만일결사에 대한 내용은 초의 의순(艸衣意恂, 1786-1866)의 「미황사만일회기(美黃寺万日會記)」에 등장한다. 이 글에 의하면 영허의 주도로 미황사 극락원에서 만일염불 결사가 이루어졌고, 이 결사는 중국의 여산 혜원(慧遠, 334-416)과 영명 연수(永明延壽, 904-975)의 가르침을 계승하였다고 한다. 이를 위해 염불과 경전을 독송하면서 아미타불을 원력으로 업장을 소멸하여 극락에 왕생하기를 발원하였다. 염불 외에도 지관수행을 통해 지혜를 얻고자 하였으며, 마음과 국토가 모두 청정해지면 정토도 달리 없다고 하는 유심정토적 입장에서 염불결사의 의의를 적고 있다. 초의는 단지 만일회기만을 지어준 것만 아니라 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영허 이후에도 미황사의 만일염불 결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진 것으로 확인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자료

  • 미황사만일회기(美黃寺萬日會記), 초의시고(草衣詩藁), 권하, 한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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