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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신계사 만일염불회

금강산 신계사의 만일염불회는 19세기 중반 말사인 보광암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육시(六時) 고성염불을 중요시 하였다.
금강산 신계사 전경(제정스님, 불교신문)
금강산 신계사는 일제 강점기 31본산 중 하나인 유점사의 말사였다. 신라대 519년(법흥왕 6) 보운이 창건하였다. 신계사 서쪽에는 부속 암자인 보광암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신계사 보광암에서 만일결사가 이루어졌다. 신계사 만일회는 1848년 이루어졌는데 이에 대한 기록으로는 명허 윤선(明虛侖璇)이 쓴「보광전염불회설시서(普光殿念佛會設始序)」에서는 원유 취봉(爰有鷲峯)이 1848년 금강산 보광암에 미타염불회를 결사하였다고 전한다. 이 때 많은 수행자들이 모여들어 불공을 드리면서, 참선, 간경, 고성염불을 하였으며, 모두 정토업을 닦고 깨달음 얻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1867년 이석신(李奭信)은 신계사 보광암을 방문하였는데 이미 이때는 1848년 만일회가 결성된지 20년 후가 되는 해였다. 이석신을 이에 대해 「신계사보광암만일회서사(神溪寺普光庵万日會叙事)」라는 글에서 적고 있다. 이 글에서는 1848년 4명의 승려가 이전의 암자를 중창하여 보광암이라고 개명하면서 만일결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화엄경 강의가 2차에 걸쳐 이루어졌고, 매일 육시(六時)에 걸쳐 아미타불을 1000념식 6번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20년이 지났으므로 7200일이 되었고 염불회수는 총 43,200,000념을 하였다고 적고 있다. 10여명의 결사자들이 20년 동안 매일 염불을 했는데 북을 치며 고성염불을 했다고 한다. 육시(六時)란 하루를 6등분하여, 새벽, 정오, 일몰, 초야, 중야, 후야로 나눈 것이다. 이처럼 육시 수행법은 하루 종일 6차례에 걸쳐 고성염불을 위주로 진행하였다. 당시의 만일결사의 수행방법과 규칙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신계사보광암만일회서사」는 매우 귀중한 사료라고 볼 수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자료

  • 신앙결사연구
    도서 한보광 | 여래장 | 2000 상세정보
  • 19세기와 20세기 초 염불당(念佛堂)의 수용
    학술논문 김지헌, 전봉희 | 건축역사연구 | 28권6호 | 한국건축역사학회 | 2019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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