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원사에서는 근대기인 1910년대 만일염불회를 운영하여 염불수행을 장려하였다.
봉원사 염불당
봉원사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로서 우리나라 범패의 맥을 전수해왔다. 봉원사는 889년(신라 진성여왕 3) 도선(827-898)이 반야(般若寺)를 처음 세운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고려 말 태고 보우(太古普愚)가 중창하였고, 조선시대 들어 태조 이성계가 삼존불을 봉안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억불정책 하에서도 봉원사는 왕실의 비호를 받게 되어 그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사세를 유지해 갈 수 있었다. 구한말 한말에는 이동인(李東仁)이 머물며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 인사들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봉원사는 조선 정조 때 전국 승려의 풍기를 단속 지도하고 승풍을 앙양하기 위한 칠규정소(七糾正所) 중 하나였으므로 대중들이 수행하기에 적합한 공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1912년 이보담이 만일염불회를 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대 불교잡지인 『조선불교월보』2호에는 봉원사 만일회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전해지고 있다. “京城 西大門 外奉元寺에셔 李寳潭氏의 主催로 該寺 靑年의 學問을 奬勸긔 爲야 講師를 顧聘야 三冬에 敎授얏스며 又 萬日會를設立고 中年以上 僧侶 皆 念佛에 從事케 다더라.” 기사를 보면 이보담이 봉원사 청년의 학문을 장려하기 위해 강사를 초빙하여 삼동(三冬)인 겨울에 교수하였고, 만일염불회를 설립하여 중년 이상 승려들이 모두 염불에 종사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이로부터 다수의 승려들이 봉원사에 거주하면서 대중들과 함께 염불 수행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봉원사 경내에는 염불당이 별도로 있는데, 이 건물은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아소정(我笑亭)을 옮겨다 형태를 조금 변형하여 지은 것이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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