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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염불회

백담사 염불회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新興寺)내 염불모임이다.
백담사(百潭寺)는 강원도 인제군 내설악에 있는 대표적인 절로 가야동 계곡과 구곡담을 흐르는 맑은 물이 합쳐지는 백담계곡 위에 있다.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가 건립하여 처음에는 한계사라고 불렀으나, 그 후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가 100개있다 하여 1783년에 백담사로 개칭하였다. 십여 차례 큰 화재를 입어 소실되었다가 6.25 이후 1957년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이 기거하며, 일제의 민족 침탈에 항거하여 민족독립운동 구상하였고 『불교유신론』, 『님의 침묵』 등을 편찬하였다. 백담사는 극락보전, 나한전, 산령각, 법화실, 화엄실 등 만해 한용운 선사의 문학사상과 불교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만해기념관과 만해교육관이 있다. 또 일주문, 금강문, 불이문, 만복전, 요사채, 만해당, 농암실, 적선당 등 24개의 건물이 있어 한국의 대표적인 고찰로 인정받고 있다.
백담사 목조아미타불여래좌상(문화재청)
백담사에 문화재로는 목조아미타불좌상(보물 제1182호)가 있다. 극락보전 안에 주불로 봉안되어 좌우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이는 영조 24년(1784년)에 조성된 것으로 지금의 북한지역 평강군 운마산 보월사에서 만들어져 이후 백담사로 옮겨졌다. 이 목조아미타불좌상은 서방극락세계에 살면서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푼다는 아미타불을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인다. 형상은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얼굴은 둥글고 단아하며, 어깨와 가슴은 넓어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한 수인은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 중생을 공포와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수인)을 하고, 왼손은 여원인(與願印: 중생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게 하려는 수인)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양손은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하고 있다. 이는 극락왕생하려는 각기 다른 중생의 근기를 상‧중‧하의 셋으로 구분하고, 그 셋을 다시 상‧중‧하로 구분하여 근기에 맞는 설법을 통해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있다. 백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기본선원으로 승려들의 참선 수행을 지도하며 염불교육을 한다. 한글염불의례를 대중화하기 위해 기본선원에서 염불특강을 진행하였다. 교육은 한글 칠정례와 반야심경을 시작으로 하여 기본선원 학인스님 전원이 참석하여 염불지도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선원에서 참선 수행만 정진하던 스님들이 염불 수행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기도 하겠지만, 최근 종단에서 한글의례 대중화를 힘씀에 출가자라면 언제 어느때고 법주로서 의식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며 한글의식을 익히는데 적극 힘쓴다고 하였다. 백담사의 산내암자인 봉정암은 자장율사가 중국 유학길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님 정골사리를 모신 곳으로 유명하다. 또 다른 암자로는 오세암은 다섯 살 동자승이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설악산의 긴 겨울을 무사히 나게 되었다는 영험설화가 전혀진 관음기도 도량이다. 오세암은 643년(선덕여왕 12)에 창건하여 처음에는 관음암(觀音庵)이라 불리었고, 1548년(명종 3)에 보우(普雨)가 중건하였다. 이 암자를 오세암이라고 한 것은 1643년(인조 21)에 설정(雪淨)이 중건한 다음부터인데, 절 이름이 오세암으로 바뀐 이유가 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설정스님이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데리고 와서 키우고 있던 중 월동 준비 관계로 양양의 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네 살짜리 조카를 위해서 며칠 먹을 밥을 지어 놓고는,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다.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 왔는데 밤새 폭설이 내려 키가 넘도록 눈이 쌓였으므로 혼자 속을 태우다가 이듬해 3월에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은은히 들려 달려가 보니,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 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아이는 관세음보살이 밥을 주고 같이 자고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자료

  • 백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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