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암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영조선사가 창건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부속암자이다.
팔공총림 동화사 염불암 (동화사)
염불암(念佛庵)은 팔공산(八公山) 동화사에서 3㎞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928년(경순왕 2)에 영조선사(靈照禪師)가 창건하였다.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창하였으며, 1438년(세종 20)에 중창하였다. 그 뒤 1621년(광해군 13)에는 유찬(惟贊)이 중창하였고, 1718년(숙종 44)과 1803년(순조 3), 1841년(헌종 7)에 각각 중수하였으며 근대에 이르러서는 1936년에 운경(雲耕)이, 1962년에 혜운(慧雲)이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과 동당(東堂)·서당(西堂)·산령각(山靈閣) 등이 있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지장보살을 봉안하였는데, 그 후불탱화(後佛幀畵)는 부드럽고 섬세한 기법으로 그린 것으로 1841년의 중수 때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중요문화재로는 극락전 옆의 암석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 및 보살좌상이 1988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청석탑이 있다. 마애불상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옛날 이 암자에 있던 한 승려가 이 바위에 불상을 새길 것을 발원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암자 주변에 안개가 끼기 시작하는데 7일 동안이나 걷힐 줄을 몰랐다. 7일 만에 안개의 걷힘과 함께 법당에서 나온 승려가 바위 곁에 가보니 발원하였던 불상이 바위 양쪽에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 불상은 문수보살이 조각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염불암’이라는 이름은 이 불상이 새겨진 바위에서 염불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대구 동화사 염불암 극락구품도(한국민족문화대백과자선)
또 염불암에는 극락구품도(極樂九品圖)도 주요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대구 동화사 염불암 극락구품도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중의 하나인『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근거하여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를 묘사한 그림이다. 극락에서 설법하는 아미타삼존과 중생들의 왕생장면,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드는 시방제불(十方諸佛) 및 청중 등을 그렸다. 불화를 살펴보면 상단 중앙에는 극락 연못에서 솟아오른 연꽃 위에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등 아미타삼존이 정면을 향해 앉아있고, 그 옆으로 서방극락정토의 장엄한 전각이 묘사되었다. 극락왕생자를 묘사한 구품 연못과 불보살을 표현한 중단 부분은 관무량수경의 14~16관의 상품과 중품, 하품의 왕생자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되며, 연못 아래 하단에는 화려한 보개를 가진 구품 연대(九品蓮臺)가 있으며, 그 아래 원형의 제1관 일상관(日想觀)이 그려져 있다. 일상관의 좌우로는 비구와 주악천인, 팔부중, 사천왕, 공양보살상 등이 보련(寶輦)을 받들고 있는데, 이것은 망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데려가는 가마로서 감로왕도에서 자주 보인다.
염불암의 청석탑은 극락전 앞마당에 있는데, 보조국사가 쌓았다고 한다. 아랫부분 3단이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위쪽 10단이 수마노석으로 된 높이 1.4m의 13층탑이다. 현재는 상층부 5층이 깨어져나가거나 갈라져 있다.염불암 경내에 칡덩굴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와 청석탑이 관련되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보조국사가 이 탑을 쌓기 위하여 나무로 말을 만들어 타고 서해의 보령과 대천에서 수마노석을 운반해서 돌아오던 도중에 산길을 오르던 목마의 다리가 칡덩굴에 걸려 부러지고 말았다고 한다. 보조국사는 이에 크게 노하여 산신을 불러서 암자 부근에 있는 칡덩굴을 모두 없애라고 명령하였는데, 그 이후로 이 암자 아래의 양진암에서 상봉에 이르는 산등성이에는 칡이 자라지 않았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
동화사
-
韓國의 佛畵. 22 桐華寺 本末寺篇 (下)
-
팔공산 동화사
-
조선 후기 동화사 염불암 극락구품도 연구
-
고려시대 동화사의 계단과 사리신앙
-
동화사 내원암 목조보살좌상 연구
-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에 대한 고찰
-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건립배경
-
팔공산 동화사 목조삼세불좌상의 복장물 검토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