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만일염불결사의 등장과 역할

만일염불결사는 불교의 대표적인 신앙결사의 하나로서 불교를 민중에게 전파하고 사찰 경제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해인사 만일염불결사(불교 제29호, 동국대 불교학술원)
만일염불결사는 불교의 대표적인 신앙결사 중 하나이다. 불교 신앙의 실천으로는 참선(參禪), 염불(念佛), 주력(呪力), 불사(佛事) 등이 있는데, 각 수행 혹은 신행활동은 개인적 혹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참선과 같은 수행은 주로 개인적으로 실천하지만, 염불·주력·불사 등은 필요시에 결사를 조직하여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신앙결사 중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결사는 염불결사이다. 염불수행은 편의상 숫자를 중시하여 일정 숫자를 채우는 수량(數量)염불과, 일정기간 동안 빠지지 않고 실천하는 일수(日數)염불로 나눌 수 있다. 만일결사(萬日結社)는 말 그대로 만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신행을 하는 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을 년수로 환산하면 대략 27년 5개월 남짓되는 매우 오랜 기간이다. 만일결사는 만일회(萬日會)라고도 칭하는데, 결사가 이루어지는 각 사찰에서 신앙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수행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집단적인 신앙결사의 효시로는 중국 동진(東晉) 시대의 여산 혜원(慧遠, 334-416)을 들 수 있다. 혜원은 백련사(白蓮社)의 아미타불상 앞에서 『반주삼매경』에 기반한 결사체를 조직하였는데 이를 백련결사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부터 염불결사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덕왕대(742-764) 진주와 영주 지역에서 신자들이 만일염불결사를 결성했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고려 성종(982)에도 포산(包山)에서 성범(成梵)이 만일염불결사인 만일미타도량을 열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함허 득통(涵虛得通1376-1433)이 염불결사를 조직한 바 있고, 18세에는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이 만일염불결사에 참여한 기록 등이 남아 있다. 이처럼 17~18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염불결사가 행해진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여러 사찰의 사적(寺蹟) 등의 기록에 의하면 만일결사가 이루어졌던 사찰만 해도 건봉사, 신계사, 유점사, 미황사, 범어사, 옥천사, 대승사, 흥국사, 불영사, 화계사, 봉은사, 봉원사, 개운사, 운문사, 해인사, 통도사, 망월사, 소림사 등등이 있다. 무수히 많은 사찰과 부속 암자에서 만일결사가 이루어져 억불숭유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던 조선불교의 등불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만일결사는 사회적 차원에서 불교 신앙을 확고히 하면서 민중들에게 불교를 전파하는 역할, 사찰 경제를 지원하는 역할, 사회 개혁과 변혁을 주도하는 역할 등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자료

  • 신앙결사연구
    도서 한보광 | 여래장 | 2000 상세정보
  • 동아시아 염불결사의 연구
    도서 김성순 | 비움과소통 | 2014 상세정보
  • 19세기와 20세기 초 염불당(念佛堂)의 수용
    학술논문 김지헌, 전봉희 | 건축역사연구 | 28권6호 | 한국건축역사학회 | 2019 상세정보
  • 더보기  +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