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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수행의 원리

위빠사나는 깨달음을 얻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이를 위해 지혜를 키워나가는 것을 수행 원리로 삼는다.
위빠사나 수행은 지혜를 함양함으로써 무아를 체험하여 깨달음을 얻는 수행이다. 초기불교에서 지혜는 ‘분명한 앎’과 함께하는 ‘통찰’을 의미하므로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의 실재(reality)를 분명히 아는 방법이라면 지혜를 키우는 것이며 이를 위빠사나라고 부를 수 있다. ‘위빠사나(vipassanā)’라는 용어는 빠알리어로서 합성어이다. ‘위(vi)’라는 말은 ‘분리하다’를 의미하고, ‘빠싸나(passanā)’는 ‘본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위빠사나의 온전한 의미는 ‘나누어 꿰뚫어 본다(洞察)’라고 할 수 있다. 한역으로는 관법(觀法)으로 번역하여 사용해 왔다. 위빠사나는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의 4가지를 관찰 대상으로 하는데, 이를 곧 사념처(四念處, cattāro satipaṭṭhānā)라고 한다. 사념처의 위빠사나는 구체적인 수행의 과정에서 ‘아누빠싸나(隨觀, anupassanā)’라는 말로 대체될 수 있는데, 아누빠싸나는 어떠한 현상을 ‘지속적으로 따라가며 본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몸․느낌․마음․법에 대해 위빠사나를 하는 것은 몸․느낌․마음․법의 상태와 느낌을 지속적으로 따라가면서 본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 몸․느낌․마음․법에 대한 ‘분명한 이해(正知, sampajañña)’가 일어날 수 있다. 이들 4가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따라가며 관찰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각종 생각, 근심. 걱정 등에서 벗어나 지금 현재 머물도록 하여 지혜를 계발하고, 깨달음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의 원리이다.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는 개념이 아닌 실재하는 현상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개념이나 이미지를 대상으로 삼는다면 집중력은 키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다. 이 때 실재란 늘 변화하므로 무상을 그 본질로 한다. 그러나 우리 앞에 나타나는 현상의 무상한 특성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고자 하면 어느 순간 선입견이 떠오르거나 기억 속의 대상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위빠사나는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보기 위해 우리가 가진 선입견과 기억의 과정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하려는 것을 말한다. 선입견은 기억에 의존하여 대상을 고정시키려는 특성이 있어 변화하는 실재를 살피지 못한다.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고정관념은 늘 변화하는 실재의 모습을 감춘다. 위빠사나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려는 시도이며 가능한 한 관념과 생각에서 벗어나 실재의 변화하는 양상을 바라보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고정관념과 잡생각에 익숙해진 마음은 빠르게 변화하는 실제를 바라보기 어렵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팔정도(八正道)가 있다. 8정도 중 바른 노력(정정진), 바른 마음챙김(정념), 바른 집중(정정)이 개념에서 벗어나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해 준다. 특히 바른 마음챙김은 사물의 무상한 특성을 잘 알아차리게 해주는 수행의 구체적인 원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수행과정은 수행자의 끊임없이는 바른 노력(정정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결과 바른 지혜를 갖추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된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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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논문 임승택 | 불교연구 | 20 | 서울: 한국불교연구원 | 2004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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