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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찬 마하 부와

아찬 마하 부와는 마음의 원칙을 지키는 엄격한 수행자였으며 ‘왓 파 반 탓(Wat Pah Baan Taad)’을 세워 많은 제자를 지도하였다.
아찬 마하 부와(Ajahn Mahā Boowa, 1913-2011)는 태국 동북부의 우돈 타니(Udorn-thani)에서 태어났다. 그는 쌀농사를 짓는 부유한 집안의 16남매 중 하나였다. 21세 되던 해, 부모의 권유로 태국의 전통 관습에 따라 출가하게 되었다. 요타니밋 사원에 들어가 차오 쿤 다마체디 존자에게 계(戒)를 받았다(1934). 존자는 그에게 ‘지혜가 부여된 사람’을 의미하는 ‘냐나삼빤노(Nānasampanno)’라는 빠알리어 이름을 주었다. 당시 냐나삼빤노는 승려로 남아있을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붓다와 아라한에 대해 연구하다가 붓다와 똑같은 깨달음을 얻고자 결심하고 열반에 이르는 수행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스님은 불교 기초 교리와 빠알리어, 율(律, Vinaya)을 공부하였다. 7년 후, 9단계의 빠알리 시험 과정에서 3단계에 합격하였다. 이후, 여러 해 동안 숲속에서 명상 수행하다가, 당시 가장 유명했던 아찬 문을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그림 1〉 아찬 마하 부와(법보신문)
1942년 29세가 된 마하 부와가 아찬 문을 처음 만났을 때, 아찬 문은 즉석에서 마하 부와에게 깨달음의 지혜와 선정에서 오는 희열 상태의 차이점을 명확히 설명한 후, 그를 숲속에 보내어 좀 더 수행하도록 지도하였다고 한다. 마하 부와는 아찬 문이 입적(1949)할 때까지 7년 동안 꾸준히 지도받으면서 성실하게 수행하여 이전보다 더 깊은 선정과 통찰 지혜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후 태국 전역을 다니며 수행하던 아찬 마하 부와는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왓 파 반 탓(Wat Pah Baan Taad)’을 세우고 정착하여 제자들을 지도하기 시작하였다. 아찬 마하 부와는 마음의 원칙을 지키는 엄격한 수행자로 유명했다. 반 나 몬(Baan Naa Mon)에서 수행할 때의 스님은 자신이 탁발한 음식만 먹는다는 13 두타행의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에서 아만심[자아의식]을 보았던 아찬 문은 자기 음식을 그의 발우에 나누어 주면서 마하 부와가 세운 자기만의 수행 원칙을 깨뜨려 더 큰 지혜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다. 이로써 마하 부와는 마음의 원칙이 수행의 원칙을 지키는 것보다 더 지혜롭다는 가르침을 배웠다.
〈그림 2〉 아찬 마하 부와가 태국 국왕과 왕비에게 설법하고 있다.(법보신문)
아찬 마하 부와는 법문을 매우 잘하였다. 철저했던 자기 수행을 바탕으로 사원을 찾아온 많은 수행자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가르침을 펼쳤다. 스님은 지혜 수련을 위해 강하고 지속적인 선정 계발이 우선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선정 계발을 위하여 몸과 마음의 관찰을 통한 지혜를 이용하는 방법, 만트라와 심상(心象)을 사용하는 방법들을 상세히 가르쳐 주었으며, 마음속의 번뇌는 일어나는 대로 곧바로 제거하되 계·정·혜를 동시에 작용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선정을 계발하더라도 지혜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아찬 마하 부와는 1963년에 인도태생의 영국인 비구 판냐왓도(1925-2004)를 법제자로서 맞이하였다. 판냐왓도는 41년 동안 ‘왓 파 반 탓’ 사원에 머물면서 외국인 수행자들을 위한 통역과 아찬 마하 부와의 법문을 영역하였다. 더불어 아찬 마하 부와의 스승인 아찬 문의 전기도 집필하였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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