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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바 킨

우 바 킨은 아나빠나사띠 위빠사나 수행법을 체계화한 재가 수행자이다.
우 바 킨(U Ba Khin, 1899-1971)은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던 1899년 3월에 수도 양곤에서 태어났다. 총명했던 그는 고등학교 최종 시험을 통과하여 금메달과 대학 장학금을 받았으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취업하였다. 회계사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인도 지방 정부가 실시하는 재무회계 시험에 합격하여 재무국 공무원을 지냈으며, 미얀마 독립 후에는 최초로 특별 재무국장이 되었다.
〈그림 1〉 우 바 킨(법보신문)
우 바 킨이 수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레디 사야도의 제자인 재가 수행자 사야 텟 지(Saya Thet Gyi, 1873-1945)를 만나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를 배우면서부터이다. 이때 우 바 킨은 집중력이 좋아서 밝은 빛을 경험하게 된다. 위빠사나 수행을 결심한 그는 집중 수행을 통해 몸의 감각에서 무상(無常)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 매년 사야 텟 지가 지도하는 7일 또는 10일간의 집중 수행에 참여하면서 집에서도 열심히 수행하였다. 1941년 철도청 공무원이었던 우 바 킨은 당시 아라한으로 널리 알려졌던 웨이 부 사야도(Wei Bu Sayadaw, 1896-1977)를 우연히 만났다. 웨이 부 사야도는 처음 만난 우 바 킨과 긴 대화를 나눈 후에 앞으로 다른 재가자들에게 수행법을 가르치라고 당부하였다. 우 바 킨은 먼저 철도청 동료들에게 자신의 수행법을 가르치다가 점차 많은 재가자에게 적극적으로 수행을 지도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우 바 킨의 수행법은 위빠사나 협회 설립(1950)에 이어 국제수행센터(IMC)를 창설(1952)하게 되면서 재가 불자는 물론이고 외국인에게까지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림 2〉 양곤의 국제수행센터(IMC)에서 정진하는 재가 수행자들(법보신문)
우 바 킨은 공무원직을 퇴직(1953)한 후에도 여러 가지 정부 일을 수행하였다. 1955년 이후에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수행 지도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정부 일에서 실질적으로 은퇴(1964)한 이후에는 수행 지도에 오로지 집중하였다. 그리하여 1971년 1월 19일 신장병으로 삶을 마칠 때까지 300명의 외국인을 포함한 3,500명의 제자를 지도했다. 이들 가운데 1955년부터 우 바 킨에게 수행법을 지도받은 고엔카(S. N. Goenka)가 있었다. 우 바 킨의 수행법은 고엔카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그의 수행법은 마하시 수행과 함께 현재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위빠사나 수행법으로 유명하다. 우 바 킨의 수행법은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入出息念]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anapanasati vipassana)이다. 우 바 킨은 재가자들에게 10일간의 집중 수행 코스를 개설해서 지도하였다. 처음 3일은 마음집중[定]을 이루기 위해서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하고, 나머지 7일간은 위빠사나[慧]를 닦는다. 호흡은 자연스럽게 하되 이 호흡에 집중하여 마음을 안정시킨 후, 온몸의 감각을 관찰하는 위빠사나를 닦는 것이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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