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시 사야도는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의 중흥조로 사념처를 기본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수행자들에게 위빠사나를 지도하였다.
〈그림 1〉 마하시 사야도(현대불교신문)
마하시(Mahāsi)는 ‘큰 북’이라는 뜻으로 미얀마 세이쿤의 마하시 사원에 있는 북에서 유래하였다. 이 북이 울리면 수행자들이 사야도(Sayādaw)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였는데 이러한 사원의 이력으로 사야도는 우 소바나(U Sobhana, 1904-1982)라는 법명 대신 마하시 사야도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야도는 큰 스님을 일컫는 말이다.
마하시 사야도는 미얀마 중부의 세이쿤에서 태어났다. 6세에 파마나 사원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6년 후 스승인 우 아디짜(U Adicca)에게 신 소바나(Shin Sobhana, 상서로운 자)라는 법명을 받았다. 1923년에 구족계를 받은 후 4년 만에 빨알리어 연구시험의 모든 과정을 통과하였다. 이후 만달레이와 모울메인의 사원으로 옮겨 학생들에게 경전을 가르쳤다. 마하시 사야도는 여러 해 동안 경전을 지도한 후 수행을 위해 따톤으로 가서 밍군 사야도(Mingun Zetawun Sayadaw)의 지도하에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하였다. 이 때에 4개월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에 매진하였다고 전해진다. 1938년에 고향인 세이쿤으로 돌아와 위빠사나를 지도하기 시작하였으며, 1941년 6월에 담마짜리야(Dhamma-cariya, 법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부터 위빠사나의 이론과 실제를 연구하며 수행을 위한 교재를 집필하였다. 사야도의 명성은 미얀마 전역에 퍼졌으며, 미얀마가 영국에서 독립한 후 첫 번째 수상이 된 우 누(U Nu)가 마하시 사야도에게 법문을 청하기도 하였다. 양곤의 한 사원에서 법을 설한 후, 이 사원이 마하시 수행센터(Mahāsi Sāsana Yeiktha)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외국인들에게도 개방되었다. 현재에도 미얀마 양곤 마하시 수행센터에서는 사야도의 제자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방문한 수행자들에게 마하시 위빠사나를 지도한다. 1952년 미얀마 정부는 마하시 사야도에에게 계·정·혜 삼학에 모두 수승한 승려에게 부여하는 아까 마하 빤디따(Agga Maha Pandita, 최승현자, 最勝賢者)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수여하였다. 1954년에는 상좌부불교 국가에서 2500여명의 승려가 참여한 제6차 결집에서 질의자 및 편집자의 역할을 맡았다. 사야도는 70여 종에 이르는 수행관련 저서와 역서를 편찬하였으며, 붓다고사의『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 빠알리 원전을 미얀마어로 번역한 후 주석을 달아 편찬하였다. 1966년에는 수행자들을 지도하면서『청정도론 해설서(Visuddhimagga-nissa-ya)』를 집필하였다.
마하시 사야도는 20세기 중반부터 위빠사나를 체계화하고 대중화 시킨 위빠사나 수행의 중흥조이다. 마하시 사야도가 가르친 위빠사나 수행법은 『대념처경(Mahāsatipatthāna Sutta)』 및 『청정도론』을 기본으로 하며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경행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수행자는 지도자와의 수행점검을 통해 수행의 방법 및 진보를 확인할 수 있다. 마하시 사야도의 제자로는 미얀마의 우 빤디따 및 찬메, 우 실라난다, 우 자나카, 우 와사와 등이 있다. 외국 승려로는 냐나포니카, 무닌드라, 아신 지나락키타 등과 조셉 골드스타인, 잭 콘필드 등의 명상지도자들도 마하시 사야도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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