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은 민돈 왕과 우 누 수상의 역할로 일반 대중에까지 확대, 보급되었다.
미얀마의 테라와다불교는 이 나라가 세워지기 이전에 이미 미얀마 전역에 알려져 있었다. 스리랑카 역사서에는 인도의 아소카 왕이 소나와 웃따라 장로를 ‘황금의 땅(Suvaṇṇabhūmi)’으로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땅이 몬(Mons)족의 나라와 동일시되고 있다. 몬족은 일찍이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민족으로 테라와다 불자들이었다고 보았다.
바간은 아나야타(Anawratha, Anuruddha) 왕이 완성한 미얀마 최초의 통일 왕국이다. 이 왕국은 11세기 신 아라한(Shin Arahan) 비구를 통해 테라와다불교를 수용한다. 아나야타 왕은 많은 사원을 건립하고 빠알리 삼장과 붓다의 사리를 쟁취하였다. 또한, 전쟁으로 쇠퇴한 스리랑카의 불교 정비를 도와주었으며 빠알리 삼장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였다. 미얀마는 이렇게 11세기 왕권의 지원과 스리랑카와의 교류를 통해 테라와다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였다.
이후 17세기에 들어선 미얀마는 많은 아비담마와 주석서를 미얀마어로 번역 출간하였다. 이는 불교와 위빠사나 수행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이해되고 전달되는 계기가 되었다.
미얀마에서 수행은 19세기 후반까지 숲속에서 수행에 전념하는 일부 승려들에게 국한된 일이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 전통은 민돈(Mindon, 1814-1878, 재위 기간 1853-1878) 왕에 의해 왕궁에서도 실천되었다. 1910년대를 지나면서 독립 미얀마의 초대 수상 우 누(U Nu, 1907-1995)는 일반 승려는 물론 재가들에까지 위빠사나 수행이 널리 보급되도록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우 트윈에 의해 설립된 양곤의 불교협회 창설 일원이며 마하시 사야도를 초빙(1949)하여 일반 대중이 위빠사나 수행법을 배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1990년에 발표한 Houtman의 미얀마 불교도의 수행 전통 연구에 의하면, 위빠사나 수행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서 미얀마 일반에게 널리 알려졌다. 많은 수행지도자는 24가지 이상의 위빠사나 수행법을 수백 곳의 수행센터와 사원에서 지도하였다. 그는 위빠사나 수행이 발전하게 된 역사적인 요인을 세 가지로 말하였다.
첫째, 현대의 위빠사나는 잘 정비된 수행처에서 많은 수행자가 함께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현대의 위빠사나 수행은 재가자뿐만 아니라 불교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셋째, 현대에는 모든 연령의 재가자, 승려 그리고 여성 출가수행자(thila-shin)로 구성된 큰 그룹들을 대상으로 가르침이 행해지고, 이들 모두 수행센터에 머물면서 수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 전통의 바탕에는 세 가지 불교 경전이 있다. 중도로서의 팔정도가 설해진 『초전법륜경』, 위빠사나 수행 주제가 구체적으로 설해져 있는 『대념처경』, 붓다고사가 지은 『대념처경』이다.
현대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의 주요 흐름은 마하시 계통의 마하시 사야도, 우 빤디따 사야도, 우 자나까 사야도, 쉐우민 전통, 그리고 모곡 사야도, 고엔카 전통, 파옥 전통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 집필자 : 전통수행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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